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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예당호출렁다리를 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현수교란다. 우린 출렁다리보다 예당호 데크 둘레길이 더 끌렸다. 호수를 끼고 둘레길을 만들고 있었다. 뭔 사람들이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 출렁다리가 사람들로 출렁거렸다.




둘레길을 걷다가 생명의 위대함을 발견했다. 나무의 뿌리가 아래로 땅속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옆으로 옆으로 뻗어가며 바위에 의지하여 바위틈 새로 뿌리를 내려가며 큰 나무를 지탱하고 있었다. 살기위한 맹렬함이 보였다.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졌다. '얼마나 힘들게 저 큰 나무의 생존을 위해 물과 양분을 찾아 공급하기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저 나무의 뿌리는 순리에 따라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갈 뿐일지도 모르는데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나는 가슴이 저렸다.


둘레길을 가다 이번엔 모내기를 하고 있는 이양기인지 땅을 고르고 있는 기계의 모습을 바라보다 추억에 잠겼다. 옛날과 모내기 모습이 다르다. 기계로 하고 있다. 옛날에는 동네사람들이 남녀노소 동원되어 모내기를 했다. 

논 양쪽에서 못줄을 잡고 일렬로 사람들이 엎드려 모를 심었다. 모심는 것은 대체로 아낙들의 몫이었다. 남자들은 못줄잡고 모 던져주고 아이들은 잔심부름도 하고 일손 모두가 동원 되었다. 어머니가 모심으러 간 날 점심때가 되면 아이들이 논두렁으로 달려간다. 큰 박바가지에는 밥하고 감나무잎에 갈치 한 토막과 각종 나물이나 반찬이 들어 있었다.

 돌아서면 배고팠던 시절 배불리 먹는 날이다. 동네잔치 날이 되는 것이다. 박 바가지에 밥 비벼 논두렁에서 먹던 밥맛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집은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 따라 다니며 나는 얻어 먹었다.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60~70%였던 60~70년대 우리 농촌의 모습이었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힘들고 어려운 시대였겠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모습으로 추억 되어진다. 

공동체의식, 협동정신, 충, 효, 예 정신 등이 살아있던 시대로 말이다. 콩 한조각도 나누어 먹던 더불어 사는 세상이었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세대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과 더불어 사는 사람 사는 세상을 전해주고 느껴보고 싶다고 추억하며 돌아서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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