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투병을 하던 죤 맥케인 미국 상원의원이 26일(한국시간) 애리조나 자택에서 82세(1936년8월생)를 일기로 숨졌다. 맥케인은 지난해 7월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미국 사회는 '진정한 애국자'를 잃었다면서 슬픔에 잠겼다.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맥케인 의원 가족에게 깊은 위로와 존경의 뜻을 보낸다. 마음을 모아 기도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언론은 신문 1면과 칼럼면을 할애해 용감한 애국자의 죽음을 애도했다. 26일 인터넷판 뉴욕타임스 1면의 제목은 '상처입은 행복한 전사 숨지다' 였다.
맥케인은 1958년부터 1981년까지 군인으로 복무하며 베트남전 영웅으로 인정받았다. 1967년 해군 전투기 추락으로 포로가 됐다. 아버지가 태평양함대 해군사령관이었지만 아들의 조기석방 협상에 대해 " 미군은 순서대로 석방돼야 한다"며 거부했다. 그는 2년간 독방에 수감되고 팔과 다리가 부러지고 무릎이 으스러지는 고문을 당했다. 석방 당시 36세였지만 고문의 고통으로 머리는 이미 백발이었다. 맥케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팔을 머리 위로 올리지 못했다.
미해군에서 22년 복무한 뒤 1981년 대령으로 예편한 그는 1982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5년 후 상원에 입성, 내리 6선을 했다.
지난 2000년 대선에 도전, 공화당 경선에서 조지 부시에게 밀려 낙마한 뒤 2008년 재도전해 대선 후보로 올라갔지만 본선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했다.
하원 경력까지 포함해 정치인으로서만 인생의 절반인 40년가량을 살았다. ‘소신’과 ‘원칙’에 따라 당의 중진으로 뼛속까지 공화당원이었다. 그러나 아니다 싶으면 미국을 위해 가차 없이 반기를 들었다. CNN은 그가 “보수적이었지만, 때때로 그의 당에 반대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은 공복이자 애국자, 전쟁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전한다.
그는 자신을 “타협의 옹호자(champion of compromise)”라고 불렀다. “열린 사회(open society)를 통치하는 데 있어 타협보다 다른 좋은 방법은 없다. 정확하게는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맥케인 상원의원은 미 정치의 양쪽(공화당과 민주당)에서 존경과 감탄을 받았다. 미국이 슬픔에 빠진 이유다. 〈사진=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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