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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이 기름 끼얹은 들불...여성들의 분노 어디까지 - 26일 이어 내달 9일 또다시 대규모 도심 시위 하기로
  • 기사등록 2018-05-23 17:54:26
  • 기사수정 2018-05-23 17: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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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의 분노 표출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성차별적 수사 관행'을 규탄하는 여성들이 오는 26일과 다음달 9일 대규모 시위를 또 예고했다.
강남·홍대 성별에 따른 차별수사 검경 규탄시위는 26일 오후 4시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난 19일 서울 혜화역에서 1만2000여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던 집회의 2탄인 6월9일 시위는 혜화역이 검토된다.


▲ 19일 혜화역에서 빨간색의 분노를 표출한 여성만의 시위대.


경찰청장의 사과와 대책이 원론적이고 형식적이어서 여성들은 더 분노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21일 청와대 청원 답변자로 직접 나서 "홍대 몰카사건의 경우 제한된 공간에 20여명만 있어서 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됐을 뿐 성별에 따라 수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의사든 판사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동일범죄동일처벌을 원칙으로 더 공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답했다.
답변 하루 뒤인 2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현장직 및 지도부를 포함한 경찰 전수 성의식 조사 및 성범죄 대응 현실 실태 조사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또다시 등록됐다. 청와대 답변의 미비를 지적하는 내용을 담은 청원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실질적인 몰카 범죄 근절 방안의 하나로 몰카를 제조·유통한 사람뿐만 아니라 이를 방관하는 시청자도 처벌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카페에는 하루에 수백 건의 글이 올라온다고 한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에서는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자른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브래지어를 입지 않겠다" "화장을 하지 않겠다"와 같은 '탈코르셋'을 다짐하는 글들이 줄짓는 등 분노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여성들의 분노는 결코 단발성이 아니다.


▲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지난17일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에서 열린 `시민행동 성차별. 성폭력 4차 끝장집회` 에 모인 참가자들.


청와대 당국과 경찰청은 다음 칼럼을 일독할 필요가 있다. 통계수치로만 변명하지 말고 여성들이 느끼는 체감의 공포를 직접 확인하라는 취지의 글이다.


개가 사람을 문다면...이훈범의 시시각각


이 갈등, 심상찮다. 좌우 갈등도 세대 갈등도 남북 갈등도 아니다. 이번엔 남녀 갈등이다.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군복무 가산점, 강남역 살인, 홍대 몰카처럼 계기만 있으면 불꽃이 튄다. 군내 나는 김치처럼 제법 묵은 주제란 말이다.
엊그제마냥 거리로 나오기도 하지만 주요 싸움터는 SNS나 기사 댓글이다. 각 지고 날 선 주장과 조롱이 차고 넘친다. 끊임없이 생산되고 쉴 새 없이 퍼 날라진다. 갈등은 증폭되고 새 전선으로 확산된다.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기도 한다. ‘미투(#MeToo)’의 진의가 의심받고 섣부른 선악의 이분법도 등장한다. 비리와 권력 남용은 남자 몫이고, 내부고발자는 여성 역할이라는 식이다.
이번 갈등의 발단은 조금 의외였다. 군 가산점 문제만큼 논쟁적이지 않았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여성 혐오도 아니었다. 몰카 사건은 그저 범죄였다. 같은 직업 종사자끼리 상도의를 깬 파렴치범이었다. 게다가 피의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이었다. 그런데도 남성 아닌 여성들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피해자가 남자였기에 수사가 적극적이고 신속했다는 게 여성들 주장이다. 피의자가 여자라서 포토라인에 세웠다고 믿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포토라인이 아니라 기자들이 몰렸던 거다. 남성 누드 사진 유출, 범인은 여성 누드 모델, 사람이 개를 문 거다.
남녀차별 수사라는 건 일리가 있다. 경찰은 억울하다지만 별수 없다. 지난해 몰카 피의자 5437명 중 남성이 5271명이었고 119명이 구속됐다. 구속률이 2%가 조금 넘는다. 발각되지 않은 몰카 범죄와 신고 못 한 사건을 감안하면 여성 피해자는 배 이상 늘어날 테고, 구속률은 ‘0’에 수렴한다. 지난해 몰카 혐의로 입건된 여성 283명 중 구속된 사람은 없다는 통계가 의미 없는 이유다.
여성의 피해의식과 경찰의 억울함은 사실 같은 데서 출발한다. 남성의 몰카 범죄가 그만큼 횡행한다는 거다. 곳곳에서 표적이 되니 여성들은 불안한 건데 워낙 흔하다 보니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개가 사람을 문 거다. 검찰과 법원의 처벌 의지도 강하지 않다. 집회에서 여성들이 내민 증거를 보면 그렇다. “몰카 460회 찍은 남성 회사원 집행유예/183명 몰카 찍은 남자 의대생 기소유예/여자 탈의실 찍은 남성 국가대표선수 자백 불구 무죄/몰카 찍은 남성 판사 4개월째 수사 진척 없음.”
이런 차에 여성들이 바라던 수사 태도를 이번 몰카 사건에서 본 것이다. 성차별을 안 느꼈으면 이상할지 모른다. 가뜩이나 ‘알파걸’들의 시대다. 학업 말고 운동이나 리더십에서도 남자보다 뛰어난 엘리트 소녀들이 넘쳐난다는 말이다. 지난해 육군사관학교의 1~3위 졸업생 모두 여생도였다. 여자 수석이 계속되다 보니 성적 비중을 73.5%에서 50%로 줄였는데도 그랬다. 여학생과의 경쟁을 피해 남녀공학에서 남고로 전학하는 사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자들이 찌질하게 여자 몰카나 찍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도 수사당국의 태도가 그대로니 여성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언론과 경찰은 다르다. 개가 사람을 물어도 경찰은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한국 여성 93%가 성평등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느낀다는 조사가 있다. 한국을 사랑했던 미국 작가 펄 벅은 말했다. “어느 민족에게나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들의 관계다. 서로 확신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지금으로 봐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는 얘기다. 더 늦기 전에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국의 성평등은 몰카 응징에서 새 출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중앙일보 5월22일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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