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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현철의 조선이야기(14) 태조와 태종, 조준을 1등 공신으로 여기다 -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알게 된 조선 - 왕현철 우리궁궐지킴이/전 KBS PD (wa…
  • 기사등록 2020-05-30 20:26:13
  • 기사수정 2020-06-02 20: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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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3년 조준은 병으로 몇 개월 째 조정에 나오지 못했고, 또한 아내의 상도 당했기 때문에  매우 수척해 있었다. 태종은 임금의 공부 스승 김과에게 “조준에게 고기반찬을 내리는 것이 어떠냐”라고 물었다. 김과는 “임금이 내리는데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라고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태종은 조준에게 고기반찬을 내린다. 조선시대 상을 당했을 때 고기를 먹지 않았다. 조준에 대한 태종의 마음 씀씀이를 알 수 있다. 


 태종은 아울러 “이 씨가 나라를 세우는 공은 오로지 조준과 남은에게 있다”라고 신하들에게 지난 시절을 떠올렸다. 태종은 조선 건국의 맨 앞자리에 조준을 올려놓은 것이다. 

조준의 외아들 조대림은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와 결혼한다. 태종과 조준은 개인적으로는 사돈관계다. 

 

태조 7년 감찰 김부는 문득 내 뱉은 말 한마디로 목숨을 앞당긴다. 김부는 동료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좌정승 조준의 집을 지나면서 “비록 큰 집을 지었지만 어찌 오래 거처할 수 있겠는가? 후일에 반드시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될 것이다”라고 술김에 객기를 부렸다. 이 말을 들은 동료는 조준에게 알렸고 조준은 이를 다시 태조에게 일러바쳤다.


 태조는 “조준은 개국원훈으로서 나라와 같이 할 사람이다. 김부가 조준을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 것은 조선의 사직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라고 하면서 김부를 극형에 처하게 한다.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은 예나 지금이나 새겨야 할 금언이다. 태조는 김부와 같이 술을 마신 동료 18명도 파면시킨다. 

태조는 조준에 대한 비방을 신하의 목숨과 바꿀 정도로 조준을 개국원훈으로서 나라의 운명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위화도 (평안북도 신의주). 태조는 위화도 회군이후 정치를 일신하고자 조준에게 손을 내민다. 사진 : 네이버 이미지


태조와 태종으로부터 조선 개국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 조준은 어떻게 조선 창업의 기틀이 되어서 무엇을 남겼는가?  

 조준은 명문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조금도 귀공자답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힘으로 충과 효를 다하겠다는 뜻만은 품고 있었다. 그를 크게 일깨운 것은 어머니였다. 어느 날 조준의 어머니 오 씨는 과거 급제자의 성대한 행차를 보고 “비록 내 아들이 많으나 한 사람도 과거 급제를 못했으니 장차 어디에 쓰이겠는가?”라고 탄식을 했다. 조준은 어머니의 탄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배움의 길에 부지런히 힘썼다.  


 그의 첫 관직 진출도 어머니의 한숨 덕분이었다. 그는 공민왕이 거처하는 수덕궁 옆을 책을 끼고 지나다가 공민왕의 눈에 띄었다. 공민왕은 그를 기특하게 여겨서 보마배행수라는 직을 주었다. 그는 어머니의 한숨으로 책을 가까이 한 것이 관직에 진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는 노력해서 고려의 과거에 합격하고 좌·우군 호위를 거쳐서 강릉도 안렴사로 나가게 된다. 서른 살이었다. ‘아전들은 두려워서 간사한 행동을 할 수 없었고 백성들은 사랑했다’라고 그의 첫 외직 근무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정선군을 순행하면서 “동쪽 바다를 깨끗이 씻을 날이 있을 것이다. 여기 사는 백성은 눈을 씻고 그 때를 기다려라”고 시를 남겼다. 왜적을 물리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후 경상도에 왜적이 들끓어서 장수들조차 위축되어 있자 최영은 조준을 파견해서 군의 기강을 바로잡고 왜적을 소탕하게 했다. 


 이성계와 조준이 만난 것은 위화도 회군 이후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정치를 일신하고자 했다. 이성계는 주위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조준을 만나서 자신의 힘이 되어 달라고 했다. 이성계는 먼저 손을 내밀고 거의 모든 일을 조준의 의견을 물었을 정도다. 조준도 자신을 믿어주는 이성계를 위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 했다. 

 

고려 말 백성을 위한 좋은 정책 중의 하나가 사전(私田)혁파다. 사전혁파는 권문세가 기득권의 반발이 심했다. 자신들의 땅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혁파는 이성계와 조준이 힘을 합친 성과물이다. 이성계는 기득권을 무너뜨리고 조준은 민생을 위해서 서로 힘을 합칠 수 있는 좋은 소재였던 것이다.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이는 것도 조준 등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정몽주는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져 병중에 있을 때 조준, 남은, 정도전 등의 핵심측근을 먼저 제거하고자 했다. 정몽주는 대간으로 하여금 조준 등을 탄핵해서 감옥에 넣었다. 

 

이방원은 조준 등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자신들의 집안 세력이 약화되는 것으로 보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수를 친 것이다. 정몽주의 죽음으로 조준 등은 감옥에서 풀려나고 이성계에게 힘이 쏠리며 조선 건국의 탄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조선건국 초기 백성들 사이에 퍼진 도참설이 있었다.

 ‘목자장군검(木子將軍劍) 주초대부필(走肖大夫筆) 비의군자지(非衣君子智)’이다.

이성계(李성계)의 검과 조준(趙준)의 문필, 배극렴(裵극렴)의 지혜를 이르는 말이다. 비록 도참설이지만 이성계와 조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조선 건국으로 배극렴과 조준은 좌·우시중이 된다. 시중은 오늘날 국무총리에 해당한다. 

 

조선에서 조준의 첫 정치적 시험대는 세자의 선정이었다. 세자 선정에 대한 태조의 물음에 조준은 “세상이 태평하면 적장자, 세상이 어지러우면 공이 있는 자”라고 원칙을 제시했다.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 한 씨의 여섯 아들이 태자의 후보가 된다. 태조의 후비 신덕왕후 강 씨가 이를 엿듣고 우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태조는 강 씨의 뜻을 존중해서 조준에게 강 씨의 두 아들 중 첫째 방번의 이름을 쓰게 한다. 조준은 엎드려서 끝끝내 방번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태조는 어쩔 수 없이 방번 대신 방석을 세자로 결정한다. 조준은 자신이 제시한 원칙을 지키지 못했으나 ‘광망하고 경솔하다’고 여긴 방번은 막을 수 있었다. 

 

조선 초기 국정의 최고의결기관은 고려에서 이어온 도평의사사였다. 조준·배극렴 등은 도평의사사에서 국가정책 과제 22개 항목을 제시한다. 그 첫째가 학교를 세워서 인재를 양성하고 농업과 양잠을 일으켜서 의식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조선의 첫 과거 시험은 태조 2년에 실시하는 데 조준은 지공거(知貢擧)였다. 지공거는 과거 시험을 주관하는 시험관이다. 송개신을 1등으로 해서 33명을 뽑았다. 이후 그는 과거 시험을 2번이나 더 주관했다. 조준은 국가의 인재를 뽑는 조선 과거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조준의 책임으로 편찬한 <경제육전>도 조선을 법치국가로 이끈 기반이 되었다. <경제육전>은 태조의 위화도회군 이후 시행된 합당한 조례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태조 6년에 편찬한 조선의 최초 법전이다. 조준은 일반 백성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이두로 적은 <방언육전>도 편찬했다. 

 <경제육전>은 그 후 <속육전(태종)> <신속육전(세종)>으로 이어졌다. <경제육전>은 전해지지 않으나 그 조문 일부는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어서 국가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태조 6년 조선 개국의 핵심 세력들 조준, 정도전, 남은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고구려의 옛 영토 요동을 정벌하자는 정도전의 계획 때문이다. 

고려 때에 위화도 회군으로 포기했던 요동정벌을 정도전이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당시 조선은 외교문서의 ‘글자’ 때문에 명나라와 외교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명의 고황제는 외교문서 작성자 정도전의 소환을 요구했다. 정도전은 <오진도> <수수도>등 진법을 만들어서 군사훈련을 하고 태조에게 요동정벌의 승산을 이야기 했다. 


 태조는 요동정벌의 최종 결심을 앞두고 조준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조준은 병으로 집에서 요양 중이었다. 조준은 병든 몸을 이끌고 궁궐로 가서 “명나라와 사대의 예를 잃지 않았고 승산이 없다”라고 반대를 했다. 태조는 조준의 손을 들어준다. 

 이로써 조준은 정도전, 남은 등과 갈라섰고 제 1차 왕자의 난에서 서로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조준은 살아남았고 정도전과 남은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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