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의 칼 솜씨는 왕의 찬탄을 부른다. 소의 근육과 뼈를 완벽하게 자르고 발라낸다. 장자에 나오는 포정이 그랬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는 포정의 귀환이었다. 빼어난 솜씨에 왕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드루킹 사건은 정반대다. 칼을 칼집에서 빼지도 않았다. 이유가 뭔지 짐작이 된다. 왕이 애지중지하던 소여서다.
드루킹이 사법당국 안테나에 걸린 시기는 1년도 더 됐다. 2017년 3월2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 선거 40여일 전이다. 드루킹이 일하던 느릅나무출판사에서 불법 선거활동을 한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불법선거운동 적발은 중앙선관위 담당이다. 선관위가 출동했지만 출판사 직원들의 방해로 조사를 못했다.
선관위는 물러서지 않았다. 드루킹이 이끌던 경공모의 거래 자료에서 수상한 자금흐름을 파악했다. 특정후보를 위한 글을 게시한 홍보성 댓글 대가로 의심됐다. 대통령 선거 나흘 전인 2017년5월5일 선관위는 자름 흐름 관련자 두 명을 대검찰청에 수사의뢰했다. 공직선거법의 매수 및 이해유도 혐의다. 경공모가 불법 사조직 및 유사기관으로 활동한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요청했다.
선관위는 직분을 다했다. 검찰 차례가 돌아왔다. 칼을 뽑아 포정처럼 솜씨를 보여야 했다. 검찰이 한 일은 시간끌기였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한참이나 지난 그해 10월16일 슬그머니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검찰이 칼을 스스로 부러뜨린 뒤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드루킹은 오사카 총영사 청탁 건으로 청와대 인사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의원 측과 500만원을 돈거래하고 은밀한 시그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모종의 협박과 거래를 이어갔다. 네이버 매크로 댓글조작사건도 검찰이 진작 칼을 뽑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다.
강자에 강해야 정의다. 거센 바람에 맞서야 정의를 지킬 수 있다. 검찰은 바람 앞에 누운 풀이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있을 수 없다. 야당의 특검도입 요구는 검찰이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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