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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한 DM(dream making)리더십포럼이사장, 전 세계일보 사장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로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랴?"

신라 제 49대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양주동 선생이 옮겨 쓴  8구체 향가다. 삼국유사 권 2에  처용랑망해사조에 관련 설화와 함께 실려 있다. 

처용의 아내가 탐이 나서 역신(疫神)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해 밤중에 그의 집에 몰래 들어 갔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두 사람이 잠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처용가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 때 역신은 무릎을 꿇고 "제가 공의 아내를 범하였으나 공은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니 감동 하였나이다. 맹세코 이후부터는 공의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고 했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 앞에 붙여 사기를 몰아내고 경사스러움을 맞았다고 한다. 

처용무는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유일한 궁중 무용으로 주술적 제의로 국난극복을 위해 행해 졌다. 신라 시대에 1인 처용무로 시작해,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2인, 5인, 9인 처용무의 형태로 변화되기도 했다. 처용 가면은 신라 초기에 역신을 쫓기 위한 무서운 형상을 했으나 후기에는 후덕한 모습으로 변했다. 조선시대 세종은 처용무를 장려했으며 폭군 연산군은 처용무를 광인처럼 추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처용무의 전통이 중단되었으나 순종의 50회 생일에 가면무가 행해져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처용가무에 대한 연구가들의 해설은 분분하다. 처용은 누구이며, 역신은 누구이며, 빼앗긴 두 다리는 무엇이며, 아내의 불륜을 보고서 왜 춤만 추었는지, 역신이 감동해 굴복한 것은 무슨 뜻이며, 처용이 물리친 것은 역병인지 강간범인지, 처용이 춤을 춘 것은 너그러운 용서인지 악마를 처단하는 주술행위를 한 것인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처용이후 천년 동안을 궁 밖에서도 춤을 추고 궁안에 불려가서도 춤을 추었던 가면무용수들은 무슨 감정으로 탈춤을 추었을까? 왕권에 짓밟힌 백성의 신음과 양반에 강탈당한 천민의 울분이 탈속에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민낯은 감추고 처용의 얼굴을 쓰고 자기 아내를 강간한 역신 같은 지배자들을 향해 춤추며 비웃었다. 철천지원수를 복수도 아니고 용서도 아니고 춤으로 분노를 다스리며 원수를 대해 멈출 수 없는 춤을 계속 추었다. 

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 죽은 의병, 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환향녀, 왜정 때 왜구에게 끌려갔던 위안부, 6.25 오랑캐의 남침을 막다가 죽은 동족의 한을 풀길이 없으니 탈을 쓰고 꿈틀 대며 춤을 춘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유 독재, 유신독재, 군사독재, 민주독재, 우파독재와 좌파독재 권력에 짓밟히고, 시달린 원한을 처용가무로 풀 수 있을까? 이 땅에는 아직도 처용의 아내를 겁탈한 역신보다 더 잔인한 지배자가 있고 처용이 빼앗긴 두 가랑이보다 더 처참한 정조와 인권과 생존권이 유린당하는 비극이 끝나지 않았다. 

정권의 장난으로 살육된 원혼과 상처 입은 민초들이 함께 살고 있다. 처용가면무는 외세와 독재에 저항해온 우리가 고난과 분노를 소화하며 득도의 경지에서 천년을 추어온 탈춤이다. 여름이 좀 지나가면 처용이 나왔다는 울산과 처용가무를 춘 왕경이 있는 경주에서 처용문화제를 열고 처용가면무 탈춤을 춘다 하니 진짜 처용이 왔는지 처용의 심정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가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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