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는 베트남으로 가서 축구 감독을 한 지 1년 만에 베트남에서 축구 영웅이 됐다. 베트남에서의 그의 인기는 날마다 치솟아 오르고 있다. 그의 초상화가 1만 달러에 팔리고, 삼성전자 65인치 TV는 '박항서 TV'로 불리면서 전보다 두 배 이상 팔렸다. 박 감독을 광고 모델로 내세워 시장에 내놓았던 동아제약 박카스가 4개월 만에 판매량 280만 개를 돌파했다. 지난 3월부터 박 감독을 홍보 모델로 기용했던 신한은행은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7.9% 증가했다.
박항서는 1959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1978년 제 20회 아시아 청소년축구 대회 대표선수로 선발되면서 본격적인 축구를 시작했다. 1981년 제일은행 축구단에 들어갔으며, 1984년 럭키 금성(FC 서울의 전신)의 선수로 뛰면서 리그전 우승으로 K-리그 베스트 1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1989년 축구 선수를 은퇴한 후에는 럭키금성의 코치로, 1994년 월드컵 대표팀 트레이너, 1997년 수원삼성 블루윙즈 코치, 2000년 11월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그 후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3개월 만에 실적 부진으로 물러났으며 그 후 경남 FC, 전남 드래곤, 상주 상무, 창원시청 등 여러 팀을 이끌다가 2017년 10월부터 베트남 국가 대표팀 U-23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지난 10월 베트남 대표팀을 맡은 지 3개월만인 올 1월 AFC(아시아 축구연맹)U-23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박 감독의 대표팀은 지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베트남 축구 사상 최초로 4위에 올랐다. 지난 15일에는 동남아시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2018 AFF 스즈키 컵에서 말레이시아를 이기고 10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면서 A매치 16경기 연속 무패의 세계 기록을 세웠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 됐다. 지난 19일에는 베트남 국영 TV가 뽑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응우옌 쑤언 베트남 총리는 박 감독에게 우호훈장을 수여했으며 대표팀에게는 1등 노동훈장을 하사했다.
베트남 수출입은행과 통신사 비나폰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박 감독과 대표팀에 보너스를 주고 있다. 각종 포상금을 합하면 24억 8000만원이 된다고 한다. 대졸 초임 월급이 30만 원 정도인 베트남에서는 엄청난 돈이다. 월 2500만원을 받고 있는 박감독의 급여도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지지열기도 뜨겁지만 지난 15일 베트남 전역의 과잉 응원전으로 최소 30여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다쳤다고 한다.
박항서는 한국에서 축구 선수, 코치, 감독 등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난 후에 베트남으로 갔다. 국내에서 축구인생을 살면서 59세가 된 역전의 노장이 한국에서 다 하지 못한 축구에 대한 열정을 베트남에서 불태운 것이다. 한국산 문화가 세계인을 사로잡는 한류의 모범사례다. 한국 상품이 세계시장에서 유명해 지듯이 한국 사람도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는 세계화시대다. 이마가 넓은데다 머리숱은 적고, 키는 작고, 나이도 많고, 인기도 없던 축구리더가 베트남에서 영웅이 된 박항서 매직의 비밀을 풀어봐야 한다.
=이동한 DM(dream making)리더십포럼이사장 전 세계일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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