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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국대선에서 공화당의 현직 부시 후보는 민주당 케리 후보에게 TV토론에서 3전3패했다. 토론을 하면 할수록 케리의 지성미와 노련함이 돋보였다. 토론 직후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은 대통령감으로 명백히 케리를 염두에 두었다. 부시의 말솜씨는 탁월하지 않았다. 목소리도 별로였다. 놀랍게도 토론이 끝나고 실시한 지지도 조사에서 부시는 케리와 격차를 더 벌렸다. 부시는 지고도 이겼다. 세 차례 토론에서 부시는 반복적으로 “케리는 너무 진보적이다”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은 부시의 이 말을 신뢰해주었다. —­


한국에서는 2002년 대선에서 TV토론이 변수역할을 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간의 토론은 1960년대 닉슨 대 케네디의 재연이었다. 이회창은 고위법관 출신답게 경직되고 고집스러웠지만 노무현은 고졸 출신 변호사답게 유연하고 개방적이었다. 이회창은 TV토론에 한 번 나가면 지지도가 2~3%씩 떨어졌다. 깔끔한 인상 때문만은 아니다. 꼰대의 느낌을 풍겼다. 노무현은 수더분한 서민 풍모로 고득점을 올렸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젊은 김민석 민주당 후보는 나이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시종 압도했다. 김민석은 이목구비가 뚜렷한데다 활기차고 자신만만했으며 말솜씨도 뛰어났다. 이명박은 사회 경험은 출중했지만 외모에서 밀렸다. 목소리도 쇳소리가 났다. 두 사람의 나이차는 23살이었다. 김민석의 지나친 자신감은 역효과가 났다. 버릇없는 태도로 비쳤다. 결국 김민석은 여론 조사 상 초반의 우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32만표 차이로 대패했다.

1995년 서울시장 선거는 정치인의 달변이 얼마나 허망한 가를 보여준다. 당시 무소속 박찬종, 민자당 정원식, 민주당 조순후보의 삼자 대결 구도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내세운 정원식은 달변이었다. 박찬종은 연설이나 말솜씨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할 사람이다. 두 사람 다 말로 선거를 하면 대통령 몇 번이나 하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이들과 달리 조순은 어눌하고 행동도 굼떠보였다. 승자는 조순이었다. 말은 잘 못해도 후덕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설명한 게 신뢰를 얻었다.

2011년 9월30일 서울시장 보선에서 야당후보 단일화를 위해 무소속 박원순 후보와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맞붙었다. 추격하는 박영선은 박원순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TV앵커 출신다운 달변으로 압박했다. 공격권은 시종 박영선이 쥐고 있었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볼 점유권이 훨씬 높았다. 개인기도 뛰어나고 드리볼도 현란했다. 하지만 박영선은 작은 문제에 집착하고 완승하기 위해 조급해했다. 박원순의 느긋함에, 어른다운 모습에 사람들은 더 점수를 주었다.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를 협공했다. 이정희는 박근혜 후보 면전에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도대체 예의라는 게 없었다. 무엇보다 독기가 가득했다. 둘의 나이차도 많다. 17년차다. 박근혜가 큰 언니뻘이다. 문재인 후보가 방관한 것은 실책이었다. 어른답게 꾸짖었어야 했다. 토론에서 박근혜는 버벅거리며 준비가 부실한 것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정희의 무분별한 언행과 문재인의 무책임한 태도 탓에 박근혜는 보수층의 결집이라는 망외의 소득을 올렸다. 

정치인에게 외모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얕보거나 자기 과시가 심한 게 문제다. 

말 잘한다고 자랑할 것은 아니다. 독불장군식의 언행을 하거나 상대를 묵사발로 만들어야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의 생각을 쉽게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늘어지고 복잡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날카롭거나 신경질적인 모습은 피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자신감과 활력,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자상함과 인자함을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 TV 수상기가 보급이 거의 안 된 시절이던 1960년 미국의 대선에서 케네디와 닉슨의 대결은 현대선거전에서 후보자의 인상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례다. TV 수상기 앞에서 잘생기고 젊은 케네디와 나이든 데다 침울한 인상의 닉슨은 대조적이었다. 사람들이 시장에서 채소를 고를 때 신선한 것에 손이 먼저가지 칙칙한 것에 손이 갈 리 만무하다. 닉슨은 불리함을 깨닫고 스튜디오의 조명을 더 많이 밝히도록 했지만 이 또한 악수였다. 열기가 닉슨의 얼굴을 번질거리게 만들어 활력과는 거리가 먼 아주 피곤한 모습으로 비쳐주었다. 

지도자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진지해야 하고 대중 앞에 설 때 활기 찬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게 승부의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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