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은 경북 울진 출신의 정치인 김중권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은 민주주의 신봉자 문희상 현 국회의장이었다. 대통령제 아래서 비서실장의 면모는 그 정권의 성격을 말해주는 요소가 된다.
김대중 정부는 김중권을 통해 동서화합의 국정 의지를 보여주었다. 노무현 정부는 문희상을 통해 국민 참여민주주의 어젠다를 강조했다. 김중권이나 문희상은 국정경험도 풍부하다. 이처럼 진보진영 정권의 대통령은 비서실장 인사를 통해 정권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었다.
이들의 뒤를 잇는 문재인 대통령은 오리무중의 길을 가고 있다. 전대협의장 출신인 임종석을 비서실장으로 앉힌 것이다. 국정경험이 풍부하고 연륜이 깊은 것도 아니다. 어떤 방향성을 보여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1년 반이 흘렀다. 두드러진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의 급진좌파 색채가 아주 짙어졌다. 행정경험보다 더 중요한 게 이념이다. 모 교수는 “현재 청와대 비서관 중에 관료 출신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임종석 비서실장 아래 비서관 31명 중 19명(61.3%)이 운동권 또는 진보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운동권 출신은 노조가 정의롭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운동권이 청와대 비서실을 장악한 사이 한국 사회에선 민노총이 최고 권력자가 됐다. 청와대도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국회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괴물’이 됐다. 임종석 실장이 뒤늦게 “민노총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라고 나무라지만 메아리가 없다.
밀월을 즐기던 문재인 정부와 민노총의 사이가 금 가기 시작한 것은 민생실패 때문이다. 민노총의 박수를 받으며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였지만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졌다. 정부가 탄력근로제 확대적용,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 등 노동정책 수정에 나선 것은 이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래서 정부가 도와달라고 읍소하지만 민노총은 되레 투쟁의 각을 세우고 있다.
민노총은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촛불시위의 전위대였다. 2016년 겨울 광화문 시위 때 대중 동원력을 과시하며 문재인 정부에 결정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명박 정부 때 광우병 시위,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 시위로 두 정권을 무너뜨렸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수정에 대해 “토사구팽이 웬 말이냐”며 반발하는 것은 이런 정치적 배경이 자리한다. 그들은 이 정권의 대주주이자 채권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법의 엄정함은 괴물이 된 민노총에게 통할 리가 없다. 과격한 노조원은 화장실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공무원의 뺨을 때리고 노조에 고분고분하지 않는다고 기업 임원을 코뼈가 내려앉도록 폭행을 하고 있다. 대법원과 검찰 청사를 점거해도 무탈하다. 야권에서는 ‘폭력행위 허가증’을 민노총에 준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눈치 빠른 경찰은 단속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래서는 나라가 아니다. 경제가 살아날 수가 없다.
소득격차는 심해지고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든다. 경제 난국이다. 노동단체의 어깃장에 대통령이 머뭇댈 국면이 아니다. 정부의 무능과 오만에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8~9주째 하락하고 있다. 경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문 대통령의 레임덕은 시간문제다. 야권에선 벌써 레임덕을 거론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국정기조를 전환해야 하고 일등공신이라도 단호하게 결별해야 할 텐데 대통령의 태도가 미적지근하다. 여야 합의로 탄력근로제를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키로 했다. 그것도 청와대에서 연 1차 여야정 협치회의에서였다. 국무총리와 여당이 연내 입법을 약속했건만 문 대통령은 총파업으로 세를 과시한 민노총을 달래느라 내년 임시국회 처리로 시기를 늦췄다. 이러니 민노총 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세금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비판의 대상이 되자 문 대통령은 이름을 바꿔 포용성장 정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민노총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면 이 정책은 민노총을 위한 ‘괴물 포용 정책’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이 칼럼은 11월29일 에너지경제신문 전문가 시각에 실린 칼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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