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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서 손을 놓아라. 懸崖撒手丈夫兒 (현애살수장부아).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한테 한 말이다. ‘매달린 벼랑에서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진정한 장부다’라는 의미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고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온다. 그 때 미련을 버리고 집착을 비워내야 공포를 이겨낼 수 있다. 비우지 않으면 담을 수 없다. 버리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 윤봉길은 폭탄 거사를 앞두고 있었다. 벼랑에서 손을 놓은 뒤 과감해질 수 있었다. 그는 나중에 역사의 인물이 됐다. 비워야 담고 버려야 가진다.  


보리스 옐친(1931~2007)은 투사였다. 용기와 결단력이 남달랐다. 옐친은 1인자가 되는 과정에서 과감했다. 압권은 권력을 내려 놓는 과정이었다. 1인자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권력을 툭 던진 것은 전례 없는 역사적 장면이었다. 러시아 국민들은 옐친이 가장 잘한 업적으로 푸틴에게 권력을 조기에 넘겨준 것을 꼽았다. 


1991년 8월 22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군부쿠데타를 진압한 뒤 지지자들과 함께 러시아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큰 권력에 과감히 맞서 권력을 쟁취한 그였다. 그런데 그는 권력을 내려놓은 것도 드라마틱했다. 알콜에 찌들어 국제적 문제아였던 옐친은 1999년12월31일 저녁 전격적인 권력양도를 발표했다. 새 천년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전 세계가 놀랐다. 그 좋다는 권력을 던지다니!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1인자 자리이긴 했다. 하지만 권력은 달콤하다. 마지막까지 놓지 않으려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용기가 없으면 안 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인자 자리를 버렸기에 그는 그 덕에 노후의 안락함을 즐길 수 있었다. 

옐친은 1999년 8월 2%대의 지지를 받을 뿐인 인기도 없던 블라디미르 푸틴을 총리로 임명했다. 푸틴의 나이 46세였다. 옐친은 푸틴을 후계자로 삼아 총리 임명 4개월 만에 1인자 권력을 넘겨 푸틴에게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대선을 치르도록 했다. 시나리오대로 푸틴은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53%를 얻어 당선됐다.  

푸틴은 옐친 전 대통령이 건네준 ‘늙은 곰’의 나라 러시아를 부흥시켰다. 때마침 고유가 시대가 오면서 가스와 석유로 경제를 살릴 수 있었다. 2번의 임기를 마무리할 시점에는 80%대의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푸틴은 옐친을 마지막 순간까지 보호했다. 

과음으로 망가진 옐친의 심장은 권력을 놓은 이후 7년간 더 뛰었다. 의사들은 옐친이 그 때 권력을 포기함으로써 생명을 얻었다고 말했다. 2007년 장례식이 열렸다. 경쟁자였던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애도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용자가 숨졌다.”

옐친은 트럼프 말대로 두려움을 모르는 용자였다. 1991년 8월 18일 소련공산당 보수파들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군은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권한을 박탈하고 크림 지역에서 휴가를 보내던 그를 체포했다. 쿠데타 발생 몇 시간 뒤 러시아 공화국의 지도자 옐친은 탱크 위에 올라가 시민들에게 불법 쿠데타에 저항하라고 촉구했다. 그 해 12월 24일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되었던 소비에트연방 소련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1993년 10월 3일 저녁 옐친 대통령은 행정명령 1400호를 발령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모스크바 외곽에 주둔한 전차사단을 끌어들여 모스크바 시내에 배치시켰다. 다음날인 10월 4일 옐친을 지지하는 군대는 탱크 부대를 동원해 소비에트(Soviet)로 불리던 의회 건물 상층부에 포탄을 퍼부었다. 146명의 사상자가 났다. 

소련은 2년 전 1991년 해체되었지만, 의회는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옐친은 자신의 자유주의 개혁을 방해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무력으로 제거했다. 그해 12월에 구성된 신 의회 두마(Duma)는 옐친의 개혁안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1917년 역사상 처음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세운 소련의 공산주의는 뿌리째 뽑혀나갔다. 그 일을 한 중심인물이 옐친이다.

옐친은 '한밤중의 일기'라는 책에서 고백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밝은 큰 불덩이처럼 살아야 한다. 빛을 쏟아 낼 수 있을 만큼 활활 타며 살아야 한다. 사람은 불꽃처럼 결국에 사라지지만 깜박깜박 사라지는 것보다 더 큰 불빛을 남긴다." 

옐친은 리더십에서는 무능했지만 권력을 쟁취하는 데 단호했고 권력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주춤거리지 않았다. 시인 이형기가 말한 것처럼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간' 옐친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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