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일 하루 연차휴가를 냈다. 청와대에 대통령이 공식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날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외빈을 만나느라 반나절 동안 청와대를 비웠다.
서울 시내 호텔에 가 있었다. 마침 방한한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 일행과 오찬 회동을 가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수행했다. 그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칼둔 행정청장의 면담 결과를 서면 브리핑했다. UAE의 실질적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가 내년 초 한국을 방문하며, 두 사람은 “양국 사이 국방과 방산 분야 협력도 이견 없이 강화돼가고 있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에도 그랬듯 유독 UAE와의 외교 전반을 임 실장이 진두지휘하는 모양새다. 배경에 대해서 청와대가 납득이 가게 설명한 적이 없다. 김의겸 대변인이 비서실장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대통령이 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3일 쯤 칼둔 일행을 만난다면 UAE에 큰 결례가 됐을까.
임 실장이 자리를 비운 동안 청와대는 연장자인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지켜야 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2일 칼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행정청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런 일은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 임 실장은 지난 10월17일 서훈 국정원장, 정경두 국방장관, 조명균 통일 장관을 대동하고 철원 남북공동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 순방 중이었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없는데도 청와대 비서실을 진두지휘해야할 비서실장이 자리를 막 비워도 되는 건지 의문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떠나면 보통 청와대를 지킨다. 휴가기간에 비서실이 느슨해지는 것을 막고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과거 청와대 비서실장은 책임감 차원에서 불문율로 여기고 관행을 지켰다.
임 실장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7월30일부터 8월3일까지 연가를 냈다. 임 실장도 그 기간 휴가를 갔다.
10월17일 최전방에서 선글래스를 끼고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르키는 임종석 비서실장. 사진=청와대
야당에서 ‘자기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해도 임 실장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비서실장도 후일을 도모하며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세계에선 짐작도 잘 하고 작정도 잘 해야 한다. 도자기 병에 담긴 술을 무작정 붓다간 술판이 엎어질 수 있다.
노태우 대통령 때 박철언 체육부장관은 떠오르는 태양으로 불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영삼 집권당대표와 러시아 외유 때 ‘수행’이 아니라 ‘동행’이라며 오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박철언은 겨우 달이었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이 사라지면 사그라지는 달이었다.
임종석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나온 길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뭔가 차별화하는 듯하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는 책 ‘운명’에서 “비서실장이 되면 대통령 부재중에 청와대를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나서기는커녕 비상근무를 하느라 더 고달팠다”고 했다.
나뭇잎이 언제나 푸른 색인 것은 아니다. 햇볕을 받아 단풍 든 나뭇잎은 보기야 좋지만 언젠가 바람 앞에 ‘추풍낙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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