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처럼 멱살 잡고 코피 흘리며 싸우는 시대가 아니다. 국민이 진절머리 내지 않도록 잘 싸워야 한다. 이 같은 시대정신에 7월17일 취임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성적 리더십, 즉 ‘보수의 품격론’과 ‘국가주의 비판론’이 잘 맞았는지 9월 초순만 해도 한국당 지지도가 회복하는 기미가 있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연속적으로 20%대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내리막길이다. 세계사적인 김정은-트럼프-문재인 3인의 드라마가 국내정치판을 압도하면서 한국당의 존재감은 미미해졌다.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 방송3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112석의 제1야당이 단 5석의 정의당보다 뒤처졌다. 40% 중후반대를 오르내리는 집권여당 민주당에겐 감히 명함도 못 내민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담론이 김병준 위원장의 국가주의비판론을 압도하고 있다. 이로써 결론이 났다. 어차피 어젠다 대결로는 승부가 안 되는 것이다.
보수 야당의 갈 길은 뭔가. 태풍이 몰아칠 때 몸을 낮추고 파도가 쏟아질 때 맞서지 않는 것은 생존의 지혜다. 현대중국의 설계자 덩샤오핑(사진)이 취한 ‘도광양회’전략이 한국당에 필요하다. 언젠가 올 기회를 기다리며 와신상담하며 힘을 비축해야 한다.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둠이 짙다. 친박계 의원들이 벌써 세 결집에 나서고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만나 내년 초 당권경쟁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친박계는 당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 연장에 더 급급해 하는 인상이다. 이들의 세 확장과 당권 도전은 한국당을 더욱 침몰 위기로 몰아갈 것이다.
단언컨대 박근혜의 화려한 정치적 재기는 없을 게 확실시된다. 친노세력이 부활한 것은 노무현과 부엉이 바위 덕에 국민 마음을 얻으면서 가능하지 않았나. 하지만 박근혜는 서울구치소에서 재판거부밖에 한 일이 없기에 친박의 부활론은 말이 안 된다.
한국당이 10월1일부터 인적쇄신에 나서기로 한 것은 때늦은 감이 있다. 당협위원장 전원 사퇴서를 받는다. 인적쇄신 과정에서 김병준에게 필요한 것은 조자룡의 ‘헌 칼’이다. 능수능란하게 쓰면 좋겠지만 막 쓰는 한이 있더라도 조자룡처럼 몇 자루의 칼을 휘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으로도 부족하다. 당의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20년 민주당 집권론’을 보라. 이해찬의 자신감은 정부와 시도에 포진한 6~7명의 대권 주자들에서 나온다. 한국당도 범보수의 인재를 모두 모아야 한다. 통합의 기치를 높이 세워 바른미래당 유승민 전 대표, 한국당에 소극적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역량 있고 지명도 높은 정치인에게 경쟁의 기회를 줘야 한다.
김병준 위원장(사진)이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방송에 출연해 “틈새가 벌어진 보수, 우파 집단을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문제”라며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친이와 친박계의 계파적 이익에 몰두해 당의 위기를 부른 자들에 대한 단호한 인적청산과 함께 보수통합은 동시 추진해야할 과제다.
노무현의 희생이 없었다면 어찌 문재인정부가 출범했겠는가. 자신을 버리지 않고 일어선 사람은 없다. 인적쇄신과 보수통합의 길은 험난할 터. 김병준은 욕먹을 각오부터 단단히 하고 조자룡처럼 능수능란하지 못하더라도 헌 칼을 들어야 한다. 덩샤오핑처럼 위대하지는 못하더라도 미래를 내다보는 웅대한 전략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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