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기자의 세상만사〉 (80) “정치인에 의혹제기 광범위하게 허용돼야” ――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경진 판사가 23일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발언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위 이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내린 판결 요지는 이렇다.
-“고 전 이사장이 문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으로 모멸하려던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평가한 여러 이유를 제시하고 있고 그에 기초해 본인 진단을 내린 것이다.”
- “자유민주주의에 수많은 개념이 포섭되듯이 우리 사회에 일의(一義)적인 공산주의 개념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와 이후 세대가 생각하는 공산주의 개념이 다르다. 지금 고 전 이사장의 표현을 허위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
-"공산주의자란 표현은 북한 정권과 내통하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북한 정권에 우호적이고 유화 정책을 펴는 사람을 뜻한다.”
-“한정된 자료로 판단하는 형사 법정에서 개별 정치인의 정치이념과 사상을 결정짓는 것은 그 능력과 권한을 넘어선다고 보인다.”
이 판결은 비록 1심이지만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키는 의미를 담는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해석하면서 대통령 선거 같은 공적인 존재를 뽑는 선거에서 철저한 검증을 위해 광범위한 문제제기와 의혹제기가 허용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 게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은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그건 국민이 판단할 문제로 남겨두었다.
민주당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판사출신의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그저 소가 웃을 일”이라며 “이 판사를 뭐라고 지칭할까요? 무지몽매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표피적 감정으로 이번 판결을 보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행태다.
대법원 판례로 보더라도 정치인의 이념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폭넓게 인정된다. “의혹의 제기나 주관적인 평가가 진실에 부합하는지 혹은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따짐에 있어서는 일반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엄격하게 입증해 낼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판례가 나와 있다. 대법원 판례와 고영주 전 이사장의 무죄선고는 일맥상통하다.
법원이 다음과 같이 주장한 고 전 이사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문 대통령의 정체성 논란에 시사점이 많다.
고영주 전 이사장은 지난 달 말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우리는 북한의 주요 주장에 동조하고 천안함 사건 등을 옹호하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 여러 사정에 대해 “취임 후 전대협이나 한총련 등 운동권 주사파 출신들을 청와대 비서실 내 요직에 집중 배치하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토지국유화 주장과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의 한미동맹 파기·주한미군 철수 발언들에 대해 용인하는 태도, 노골적인 친중반미노선 추구,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등 대공수사 기능 무력화 시도, 현행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삭제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의 헌법개정 시도,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역시 ‘자유’ 용어를 삭제하려는 시도 등에서 과연 고소인(문 대통령)은 양심상 아직까지도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거나, 북한의 주의·주장을 지지·추종하지 않았다거나, 자신의 소신대로 국정을 운영해도 대한민국이 적화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에 검찰이 “고 전 이사장은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검찰주장을 배척했다.
대통령의 정체성과 이념은 한 국가와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철저하게 검증되고 확인돼야 한다. 이번 판결에서 그걸 재삼 확인한다.
<저작권자 이슈게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따뜻하고 바른 사회를 위한 불편부당 시대정론지 이슈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