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한밤중에 그렇게 올 수 있다.” 지난 2011년 6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민주평통 간부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한 말이다. 이 전 대통령이 성경 구절을 차용해 한 말을 새삼 들춰내는 것은 오는 9월중에 세 번째로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를 한데 대해 일부 진보매체들이 마치 통일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양 호들갑을 떨기 때문이다. 정말 통일이 오긴 오는 건가? 우리는 과연 통일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런 의문과 함께 독일 통일과정의 숨은 일화와 배경을 돌이켜 보고자 한다.
“The Berlin Wall has collapsed.” 1989년 11월 9일 긴급 뉴스로 전 세계에 타전된 이탈리아 뉴스통신사 ANSA의 동베를린 발 기사 제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로 번역되는 이 뉴스는 오보였다. 그러나 이 기사는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서독 통일을 가져온 세기의 특종이었다. 당시 동독 정부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는 전국에 TV로 중계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사흘 전에 발표한 ‘여행완화법안’에 출국비자를 발급하는 새로운 기관을 설립한다는 조항이 시민들의 반발을 야기하자 이로 인해 비자발급에 제약이 없다는 점을 발표하였다. 그는 전날 밤의 숙취 때문에 내용을 잘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eased travel restrictions”(여행제한조치를 완화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탈리아 기자가 “그럼 언제부터 시행하느냐”는 질문을 했고 샤보브스키는 “지금 당장”이라는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의 말은 기자들에 의해 “The border was opened”(국경이 개방됐다)를 거쳐 “The Berlin Wall has collapsed”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 기사는 전 세계에 타전되었고 이를 본 동서 베를린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모여들기 시작해 시간이 지나면서 수천 명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총을 겨누고 막았고 있던 경계병들도 뉴스를 접하고 두 손을 들었다. 수많은 동서독 시민들이 장벽에 올라가 망치로 부수고 나팔을 불며 함께 기뻐하였다. 콜 수상과 브란트 전임 수상, 서베를린 시장이 그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이후 2주 동안 300만 명의 동독사람들이 서독을 방문했다. 장벽이 붕괴된 후 동서독 정부는 빠르게 협상을 진행해 약 1년 후인 1990년 10월 3일 역사적 협상을 마무리했다. 한 사람의 말실수가 독일을 통일로 이끈 셈이다. 이 일화대로라면 정말 통일이 도둑처럼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당시 상황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독일 통일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989년 가을 동독에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라이프치히 시내를 행진했고, 많이 모일 때는 7만 명이나 되었다. 체코와 헝가리에서는 동독 시민들의 대규모 이탈 사태가 발생하였다. 프라하와 바르샤바에서는 6천 명이 넘는 동독 시민들이 서독 여행 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서독 대사관에서 캠핑을 하고 있었다. 동독 경제는 부도직전에 몰려있었는데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나라는 서독밖에 없었다. 서독에서는 반대급부로 동독사람들의 서독 여행을 허락하고 민주화 시위를 강제 진압하지 말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미 동독의 붕괴는 시간문제일 뿐 정해져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지금 북한에 당시 동독과 같은 상황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 공산체제가 내부적으로 무너져야 한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병들어 죽어가는 김정은 정권에 링거주사를 놓는 것만 같다. 오히려 통일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꼴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통일을 이뤄 낼 수 있는 지름길은 국제사회와 공조 하에 과거 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일관되게 조건부 압박정책을 펴는 것이다. 역사는 마지막에는 항상 정의의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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