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기에 개국과 중앙집권화를 다지는 데 이바지한 사람들을 흔히 훈구파라고 부른다. 특히 세조 때 왕위찬탈을 도와 공신이 된 세력들은 그 후 왕권교체와 몇 차례의 정치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성종 초에 이르기까지 정치권력을 독점하였다. 그러다가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 성종이 세조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친정을 하게 되자 훈구세력의 비대한 권력을 견제하고 자신의 세력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김종직 등 새로운 정치세력을 기용하였는데 이들이 이른바 사림파이다.
사림파는 대체로 조선 개국에 반대 입장에 섰던 고려 말의 정몽주와 길재에서부터 이어져 온 학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치에 있어서 대의명분을 중시하고 이상적인 도학정치를 꾀하였다. 그러면서 훈구파의 왕위찬탈 및 권력형 축재 등을 정통성 및 도덕성 부재로 비판하면서 점차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훈구파와 새로이 밀려드는 사림파간의 세력 싸움이 빚어진 것이다. 성종의 사후 연산군, 중종, 명종 대에 일어난 네 차례의 사화는 훈구파가 사림파에 대한 반격에 나서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오늘날까지 70여 년간의 정치변화 속에서 보수와 진보진영 간의 공수 교대를 바라보면서 새삼 조선시대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이 연상된다. 현재 보수세력의 뿌리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건국세력과 박정희를 앞장세운 산업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해방 이후 남북분단과 동존상잔의 시련 속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던 나라를 선진국 반열로 도약시키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이와 달리 진보세력들은 대체로 임시정부의 정통성에 입각해 4·19 학생혁명과·5·18 광주항쟁,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져온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통해 우리나라를 민주국가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독립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유일한 사례인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은 두 세력 모두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눈 여겨봐야 할 부분은 조선시대 훈구파와 사림파의 치열했던 대립과 오늘날 보수·진보 진영 간의 싸움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현재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진보세력들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보수·기득권세력의 탄압으로 많은 희생을 치렀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림파 역시 훈구세력들에 의해 여러 차례 사화로 피바람을 맞고 중앙정계에서 밀려나 있다가 선조 대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훈구파가 악이고 사림파만이 선인가? 이후의 역사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사림파의 집권 이후 조선은 성리학적 명분에만 집착하고 바깥세상의 변화를 외면하는 이상한 나라로 변모하였으며, 자기들끼리 다시 붕당을 만들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이다가 급기야는 나라를 잃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6·13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우리나라의 보수진영은 더 이상 소생 가능성이 없으며, 심지어는 현재 진보진영의 중심인 민주당이 기득권화해 보수세력으로 변모하고 정의당이 새로운 진보세력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는 진단마저 나오고 있다. 시대의 큰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겠지만 우려되는 것은 자칫 지나치게 대의명분에만 매몰되어 마침내는 나라를 망하게 한 사림파의 전철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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