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기자의 세상만사〉 (70) 탈 난 대통령의 퇴근길 호프미팅-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작년 3월 노량진 빨래방을 찾아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청년 배준을 만났다. 당시 문 후보는 이 청년과 취업 준비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서 인근 삼겹살집으로 옮겨 소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문 후보는 청년에게 술을 따라주며 “준이의 군무원 시험 합격을 위하여”라고 건배했다. 자신의 넥타이를 선물하며 “시험에 합격하면 첫 출근 때 꼭 (착용하라)”라고 덕담도 했다. 홍보동영상으로 알려진 이 장면은 자상한 아버지 상을 심어주는 데 제격이었다.
그 청년이 26일 광화문 호프집 ‘깜짝 만남’에 참석했다. 청와대는 당초 '문 대통령의 깜짝 방문'이라며 이날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걸 아는 사람은 없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공약했던 광화문 호프미팅은 자연스러운 ‘깜짝 만남’이 아니었다.
눈 밝은 사람이 있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였다. 그는 27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휴대폰 사진을 들어 보이며 "문재인 대통령이 어젯밤 호프집에서 만난 청년은 시장통에서 문 대통령과 소주잔을 기울인 바로 그 청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이 좁은 건지 아니면 탁현민 선임행정관의 기획력이 탁월한 건지"라며 "문 대통령께서 언제까지 이런 쇼통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가져가려고 하는 건지 지켜 보겠다"고 비판했다.
청와대가 긴급 해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작년 3월 노량진 빨래방에서 당시 대통령 후보이던 문 대통령과 만났던 군무원 준비생 배준씨는 의전에서 연락해 어제 참석했다. 그는 대통령 일정임을 알고 온 유일한 참석자이며 이전에 만났던 국민을 다시 만나 사연과 의견을 경청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배씨는 현재 광주 소재 대학으로 복학한 대학생이다.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청년 구직자'로서 참석했고 사전에 문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전날 미리 설명을 하지 않은 데 대해 "배준씨가 숨겨질 것이라 믿고 공개 안 한 것이 아니고, 참석자 설명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청와대는 이처럼 다 아는 사람을 불러놓고 굳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번개 모임’인양 언론에 설명했을까. 배씨뿐 아니라 다른 참석자들도 미리 섭외가 됐고 엄선된 사람들이다. 대통령 경호 상 미리 누가 참석할지와 행사장 내 인원 통제 등 사전 계획과 점검은 필요하다. 그러니 청년과 자영업자의 고충을 듣는 자리라고 설명하면 아무 탈이 없었을 텐데 ‘깜짝만남’ 같은 감성적 표현을 쓰면서 일이 꼬였다.
이날자 주요 신문 1면엔 문 대통령과 청년, 자영업자들이 담소하는 장면이 크게 실렸다. 폭염에 사이다 같은 장면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의 일처리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는 사람을 불러 모은 꾸며진 자리였다는 게 알려지면서 되레 반감을 불렀다.
문 대통령의 안보관과 경제정책 방향을 두고 논란이 많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높은 것은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겨지는 그의 태도에 영향 입은 바가 크다. 몸을 낮춰 약자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고 권위대신 소탈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런데 광화문호프 행사 같은 일이 되풀이되면 진심이 의심받게 된다. 겉으로는 화려해도 연출된 것의 식상함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문 대통령은 내성적인 성격이다. 보기 좋게 꾸미고 연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대통령이 되고 나서 달라질 수는 있다. 주변과 측근의 강요에 의해 얼굴 표정과 말을 그럴싸하게 연출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본성과 다른 억지 행동을 하면 탈이 나는 것이다. 초심을 잃은 것은 아닌지, 샛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내 발걸음이 어지러운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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