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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대통령부인.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나타샤 티드의 ‘세계사를 바꾼 50가지 거짓말’은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부터 근현대까지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역사를 ‘거짓’이라는 테마로 엮어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세계사의 명암을 새롭게 재조명한 책이다. 


여기에서 다뤄지는 28번째 이야기가 바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로 프랑스 혁명 당시 37살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오해와 진실이다.


  우선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여인들이 빵을 달라고 폭동을 일으키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무심하게 말을 던졌다는 에피소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왕비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세상 물정 모르는 왕비의 무지와 함께 왕실의 부패와 비리를 부풀려서 혁명의 당위성을 주장하고자 한 당대의 혁명세력들 혹은 후대 사가들에 의해 조장된 근거 없는 낭설이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장자크 루소의 ‘고백록’에 젊은 공주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적혀 있고 이것이 와전됐다는 설이 있지만, 이 책이 완성된 시기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20년 전이라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민중의 불신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사건은 1785년에 일어난 ‘다이아몬드 목걸이 스캔들’이다. 


이 사건은 라모트 백작부인이 왕비에게 환심을 사려던 로앙 추기경에게 접근해 대리 구매를 하도록 유도한 후에 중간에서 가로챈 전형적인 사기였다. 

재판을 통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왕비는 결백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파리 시민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두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향한 증오의 도화선으로 작용하였다. 


이 밖에도 그녀는 ‘동성애자’라느니 스웨덴 귀족과 바람을 피웠다느니 하는 근거 없는 소문에 시달렸지만 궁정 호사가들의 입방아일 뿐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시에 프랑스의 숙적이었던 오스트리아의 공주로서 양국의 동맹관계를 위해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한 정치적 희생양이었다. 


그녀의 대표적 이미지로 ‘사치’를 꼽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전과 비교할 때 평균 수준이었으며 결혼했을 때 이미 프랑스 궁정의 국고는 거의 탕진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오히려 쓰러진 농민을 직접 치료해 줄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며, 빈민구제와 농경 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프랑스 국민들이 오랜 적대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 공주 출신의 왕비에 대한 미움이 깊게 박혀 있다 보니 재정 악화의 원인이 왕비의 사치 때문으로 생각했으며, 결혼 후 7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을 두고도 온갖 외설적 중상모략과 악랄한 비난을 쏟아낸 것이다. 


동성애자나 염문설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혁명재판에서 그녀에게 붙여진 죄목은 국고를 낭비한 죄와 오스트리아와 공모하여 반혁명을 시도하였다는 죄명과 함께 10살도 채 안 된 아들 루이 17세와의 근친상간 혐의까지 덮어씌웠다. 혁명의 광풍에서 불어 닥친 마녀사냥이었다.

  


채성준 교수. 






최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사건’을 두고 때아니게 마리 앙투아네트가 소환되었다. 


사실 이 사건의 본질은 불법적인 ‘함정취재’이다. 그러나 그동안 국민들에게 덧씌워진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중첩되어 일파만파로 이어지자 김경율 국민의 힘 비대위원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 역린을 건드리면서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 갈등의 발화점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역사적 사실로 볼 때 김경율 비대위원의 비유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김 여사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 진실이 덮여져 있어 이를 털어버려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김경율 비대위원 발언의 전후맥락으로 볼 때 ‘사치의 화신’만으로 잘못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를 김 여사에 비유하는 역사적 무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의 누구라도 이 발언을 곰곰이 살펴보면서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반추했다면 오히려 이를 맞받아 진실은 김 여사 편이라고 웃어넘기는 여유를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치는 사자성어를 즐겨 쓰던 김종필 전 총리처럼 여유가 있어야 하고, 정치인이 되려면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감옥에서 하루에 10시간씩 5만 권의 책을 읽진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역사 공부는 해야 한다.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인의 몸가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나쁜 왕비는 아니었더라도 뭔가 빌미를 줄 만한 꺼리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참외밭에서는 신 끈을 고쳐 매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바로잡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김건희 여사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인의 자세는 그만큼 엄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억울한 측면이 있더라도 국민들 앞에서 사실관계를 속 시원하고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혁명의 열기가 가라앉으면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 조금씩 바로잡아지긴 하였지만 그 후과는 길고도 길다. 그것이 바로 역사가 주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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