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층 내부의 비밀주의와 부처이기주의, 대충주의가 심각하다.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 파동 이후 고위인사들의 거짓말과 면피주의 등이 양파껍질 벗듯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서 긴급하게 특별수사대 수사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감춰져 있었을 것이다.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과 관련해 그동안 감춰져 있던 '비밀'은 이런 것들이다. 국방장관은 감사원장에게 구두로 법리검토를 묻고 감사원장은 일반론적인 답변을 한 뒤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국방장관은 감사원장에 귀띔한 지 열이틀 뒤 청와대 참모들에게 문건의 존재사실을 두루뭉술하게 알렸다. 비서실장과 안보실장, 민정수석 등은 국방장관의 구두보고를 듣고도 무심하게 지나쳤다.
국방장관은 그로부터 두달이나 지난 뒤 청와대에게 문건보고를 하고 여당의원에게 자료를 전달했다. 여당에서 군사반란 음모론이 터져나오고 지지자들이 댓글 등으로 동조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졌다. 대통령은 긴급하게 외국 출장 중에 수사지시를 내렸다.
대통령만 뒤늦게 보고받은 것인가. 특별수사단이 수사해야할 대상에 이런 집권 측의 주요 인사들도 포함돼야할 판이다.
국방부와 감사원의 설명을 종합하면 송 장관은 3월16일 문건을 기무사령관에게서 보고 받고 이틀 후인 3월18일 최 감사원장에게 문건의 위법성 여부를 물었다. 평창 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 참석했을 때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장이 자발적으로 밝힌 것도 아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치열한 암투’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자 뒤늦게 털어놓았다.
감사원은 “감사원장이 일반론 수준의 답변을 한 적은 있다”며 “감사원장은 군에서 특정 정치세력의 주장 자체를 진압하려는 의도였다면 군의 정치관여로 볼 수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통상의 방법으로 치안유지가 어려운 상황을 예상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검토한 것이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해명했다.
한마디로 ‘개인적인 일반론을 말한 것이지 공식적인 법리 검토가 아니다’로 요약된다.
이에 따라 “외부기관에 법리검토를 의뢰했다”고 설명한 앞서 국방부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장관이 비공식적으로 감사원장에게 물어본 것을 마치 공식적으로 외부기관에 의뢰한 것처럼 국민 앞에서 설명했다.
이 뿐 아니다. 송 장관은 문건을 보고 받은 한 달 보름 뒤쯤인 4월30일 청와대 참모진들에게 기무사문건의 존재를 언급했다고 했다. 송 장관은 “당시 기무사 개혁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과거 정부 시절 기무사의 정치 개입 사례 중 하나로 촛불집회 관련 계엄을 검토한 문건의 존재와 내용의 문제점을 간략하게 언급했다”며 “그러나 국방부의 비공개 방침에 따라 청와대에 문건을 전달하지 않아 이 문건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고 했다. 당시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도 참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문 대통령 나에게 문건 전모 가져와라 http://issuegate.com/news/view.php?idx=1427
송 국방의 태도는 여기서도 일처리가 매끄럽지 않다. 문건을 그대로 가져가서 보고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송 국방의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청와대 참모들의 실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참모들이 가볍게 들었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문건 존재 사실을 들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눈 뜬 봉사처럼 사태의 핵심을 놓쳐놓고 뒤늦게 부산을 떤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문제점은 이런 것이다. 국방장관의 독단과 허술한 일처리, 국민에게 허위사실을 알리는 태도는 심각하다. 공직자의 기강을 바로세워야할 감사원장은 기무사문건의 존재를 듣고도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국방장관이 공식회의에서 논란의 문건을 언급하는데도 청와대 참모들은 흘려들었다. 조국 민정수석은 “보고받지 않았다”라고 한 발 뺐고 김의겸 대변인은 보고에 대해 “회색지대 같은 부분이 있다”고 애매하게 말했다. 사실상 직무유기 아닌가. 대통령이 그토록 분노하는 내용을 그리 무시하고 묵혔다니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집권세력이 끼리끼리 칸막이를 높이 쳐놓고 그 뒤에 숨어 제 팔만 열심히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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