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45) 청와대 선임 행정관은 지난 달 29일엔 페이스북, 30일엔 문자메시지로 “‘잊혀질 영광’과 ‘사라질 자유’”라고 한 뒤 “이제 정말로 나가도 될 때가 된 것 같다”고 사의를 공개 표명했다. 그랬던 탁현민이 이틀 만에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복귀했다. 공직의 귀감이 돼야할 청와대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과거 청와대에서 행정관 한 명의 인사를 두고 이리 소동을 벌인 것을 듣지를 못했다. 다른 보수정권들이야 비교대상이 아니다. 철저한 위계질서와 엄격한 공직관을 요구했으므로 행정관 정도야 그냥 조용히 들고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배 비서관들과 소탈하게 지냈다.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면 “아, 담배 한 개비 줘봐”라며 맞담배도 하고 그들을 ‘동업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흉허물 없이 지냈다는 의미다. 노무현은 그리 소탈했지만 행정관급이 청와대의 공직기강을 뒤흔들며 사퇴논란을 일으킨 사실을 알지 못한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는 달라졌다. 아니 “이상해졌다”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기껏 선임행정관 탁현민이 ‘몽니’를 부리자 청와대 비서실장이 선문답하는 것처럼, 그것도 대변인을 통해 공개적으로 “첫 눈 오면 놓아 주겠다”며 사의를 만류했다.
무슨 시민단체나 향우회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이 모든 일은 탁현민의 상급자로 임종석 비서실장의 최측근이 부임한 뒤 일어났다. 인사 불만이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의 사의설과 수습과정도 오십보 백보다. 부하인 경제수석과 일자리 수석이 며칠 전 경질됐다. 그 정도면 상급자인 장 실장이 책임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지난달 15일 그의 사퇴설이 언론에 보도되자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 “오보”라고 부인하고 이어 장 실장은 이런 격문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저는 촛불이 명령한 정의로운 대한민국, 정의로운 경제를 이뤄낼 때까지 대통령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대통령과 함께 경제를 살리겠다는 게 아니라 촛불을 살리겠다는 다짐이다. 경제를 책임진 최고위 공직자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청와대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그들만의 리그’라고 쓴소리를 했다. 강 교수는 지난달 한 토론회에서 “청와대 비서실에 너무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있으니 바깥에서는 뭐라고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끼리끼리’ 모여 있으면 자질과 역량, 기강과 도덕성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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