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아들 셋을 불러 “돈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22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아버지가 대통령 재직 시 구속됐다. 아들은 아파트 베란다 장독에 돈뭉치를 넣어 꺼내 쓰곤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은 대우건설 회장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부터 두둑한 돈뭉치를 받았다. 돈을 준 사람은 한강에서 투신자살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부 인사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아들이 구속되는 것을 보고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만사형통' 형은 저축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동생이 대통령 재직 때 구속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배우자가 없었지만 특수관계인보다 더 가까운 최순실에게 속아 탄핵되고 구속돼야만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막강한 힘을 가진 대통령제 아래서 돈과 권력 자리를 탐하는 파리들이 대통령의 가족과 친인척에 꼬이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로 엄격하게 막지 않으면 불행과 실패가 되풀이 된다. 그래서 만든 게 청와대 특별감찰관 제도다. 이 법은 '대통령의 친인척 등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의 비위행위에 대한 감찰'을 하기 위해서다. 현재 집권당인 민주당이 2014년 주도해 만든 법안이다.
누구보다 앞서 특별감찰관을 임명해야할 문재인 대통령이다.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과 친족의 부정부패를 목도한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노건평씨의 금품수수 뿐아니라 권양숙 여사의 2억원짜리 시계세트 수령 사건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지 1년하고도 두 달이 지났다. 여전히 특별감찰관은 공석이다. 대신 측근 조국 민정수석에게 친인척 관리 업무를 맡겼다. 지난 18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조국 민정수석이 중심이 돼 청와대와 정부 감찰에서 악역을 맡아 달라.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 관계인에 대해서도 열심히 감시해 달라"고 했다.
과거 정권에서 민정수석에 맡긴 친인척관리는 모두 실패했다. 대통령의 비서는 본질적으로 휘슬을 불며 심판처럼 행동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국 수석이라고 용 빼는 재주가 있을 리 만무하다. 문 대통령의 복심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관은 “문 대통령 가족이나 친인척 중에는 부담을 줄 만한 사람은 없다”며 “사고 칠 가능성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했다. 어느 정부치고 이 같은 장담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자신감이 넘치면 오만해지고 방심하게 된다.
청와대가 특별감찰관을 공석으로 두는 배경은 공수처(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입법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한다. 공수처법은 야당이 반대하고 있어 입법 시기를 기약하기 어렵다. 공수처 입법이 조속히 안된다면 특별감찰관제도는 현 정권에서 더욱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도둑들은 감시망이 느슨해지면 담장을 넘는다. 돈과 자리와 권력이 넘쳐나는데 그냥 놔둘리 만무하다.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에게 친인척 감시까지 맡긴 것은 사각지대를 지키기 위해 CCTV와 높은 담벼락 등 2중3중의 안전망을 치는 대신 그저 개 한마리만 풀어 대문만 지키는 꼴이다. 지방선거 압승 이후 청와대가 위험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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