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 사람들은 국민을 호랑이로 알면 된다. 국민을 맹수로 알라고, 어렵게, 그것이 맞는 말이죠'' ''내 일찍이 정치는 허업이라고 그랬지. 실업은 열매를 맺는 것이 실업이고 정치인들 열매를 맺어 놓으면 국민이 따먹지.''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숙환으로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그는 생전에 정치 9단의 능변가로 많은 명언을 남겼다.
충남 부여 출신인 김 전 총리는 육군 예비역 중령으로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35세에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맡았고 1960년대 초에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을 주도했으며 1972년 국무총리로서 유신헌법을 공포했다.
1963년 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이후 9선을 지내면서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1960년부터 1990년까지 3김시대를 이끌었다. 1987년 '충청대망론'을 내세워 대권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으며 1990년 3당합당, 1997년 DJP 연합 등으로 킹메이커에 머물렀다.
정부는 김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정치권도 고인을 애도 하면서 평가는 다양하게 갈리고 있다. ''한국 현대사 그 자체'' ''현대 정치사 거목'' ''민주주의의 한 축'' ''국가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 ''영욕으로 점철된 삶'' ...
JP에 대한 김종필의 평가는 ''5.16군사 쿠데타의 주범''과 ''조국근대화의 주역''으로 극명하게 대립한다.
그가 '군사 쿠데타' 라는 오명을 쓰고 일으킨 5.16, '매국 이완용' 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성사시킨 한일협상에 대한 찬반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유신헌법을 군사독재의 산물이며 새마을 운동을 산업독재의 실상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북한의 적화도발로 부터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바른 통치행위이며 산업화를 앞당겨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모범적인 경제개발정책 수행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후퇴시키고 산업화는 전진시켰다고 보면 될까?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JP는 한일관계 초석을 놓은 분''이라며 깊은 조의를 전해왔다. 그런데 국내에는 최고 훈장 무궁화장 추서를 놓고 찬반 소리로 시끄럽다.
고인은 유언을 통해 국립현충원 대신 검소한 가족장과 선산에 묻히길 원했다. 묘비명도 미리 정해 주었다.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고 하고 노을빛 석양을 아름답다고 그리던 고인이었다. 아호 운정(雲庭)의 의미대로 구름정원에서 노닐기 위해서인지 JP는 소이부답하며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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