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빈소 조문은 없던 일이 됐다. "포용 차원서 해야 한다"와 "반평화세력인데 무슨 조문이냐"는 정치권 안팎의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청와대는 25일 "빈소 조문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명의의 조화는 보냈다. 청와대에서 한병도 정무수석이 조문했다. 논란이 된 무궁화 훈장은 김부겸 행자부장관이 유족에게 전달토록 했다.
이낙연 총리는 23일 빈소에서 "대통령의 동정에 대해 총리가 함부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오실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 총리는 상식적 선상에서 말했겠지만 이는 명백히 잘못 짚었다. 청와대 수석들 기류는 완연히 달랐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정서가 JP 빈소의 조문을 용납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JP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를 반대했다. 이에 대해 지지자들의 반감이 깊다. 당시 김 전 총리는 홍준표 한국당 후보와 만나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먼저 만나겠다'고 말한 언론 인터뷰 내용에 대해 "뭐야 김정은이 자기네 할아버지야. 이런 자식을 왜 뽑으려고 해"라고 언급한 게 알려졌다. 또 "문재인 같은 얼굴이 대통령 될 수가 없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라며 "무엇을 봐도 문재인이 돼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인 황교익 같은 사람은 ‘실패한 인생이다. 징글징글하다’고 JP를 폄하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조문과 훈장 추서를 반대하는 글을 경쟁적으로 올렸다. 쿠데타를 하고 독재권력의 2인자에게 무슨 훈장이냐는 것이다. 일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별세하면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훈장을 줄 것이냐고 묻는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매국노 김종필 국가훈장을 반대한다'는 등의 비판 글을 올리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반발에 흔들린 건가. 그런 것 같다. 그 못지않게 문 대통령도 JP에 대한 못마땅한 감정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서 자신을 “문재인은 이름 그대로 문제”라고 했던 김 전 총리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있다.
문 대통령은 "그분은 정말 많은 문제를 가슴에 품고 고뇌하고 있는 제 모습을 정확하게 본 노련하고 노회한 은퇴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정치는 흐르는 물과 같다. 고인 물은 흐르지 않고 썩는다"라며 "JP는 오래전의 고인 물이다. 후진한테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전직 대통령이 두 명이나 감옥에 가 있다. 우리는 정계원로에 대해 진영에 따라 존경과 증오의 감정이 교차한다. 미국은 다르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이념과 무관하게 국가적 행사에 함께 참가하고 미국민에게 화합메시지를 보낸다. 지난 4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 바버라 부시여사가 별세하자 클린턴, 오바마 전직 대통령 내외와 현직 트럼프 대통령의 멜라니아 영부인이 함께 조문하고 조의를 표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전직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었다. 5·16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3당합당에 이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3김 시대를 이끌며 한국 현대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국민화합을 위해서 JP 빈소에 조문을 갔어야 했다. 설령 고인이 '고인물'이라 하더라도 권력을 잡은 문 대통령이 새시대를 향해 물꼬를 터야 했다. 김종필의 파란만장한 삶은 좋든 싫든 우리네 역사의 일부분인데 한 시대의 정치인이 굳이 우리 역사의 잘잘못과 선악을 구분해야 하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 정치가 언제 더 따뜻하고 더 여유로워질 것인지 문 대통령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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