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성역은 아니다. 신의 영역이 아니고 사람이 하는 거라 실수도 한다. 양심을 팔고 법률로 장사하는 못된 판사들도 있다. 어느 곳이든 흙탕물을 만드는 미꾸라지는 있다. 아무리 그래도 대법원장은 마지막까지 이 시대의 보루다. 최고의 지성이고 양심이자 이성과 상식이어야 한다.
오늘 한국의 지성과 상식은 뒤집히고 있다. 70대의 전 대법원장이 1일 자택 앞에 기자들을 불러 이런 말을 했다. “재판거래 논란은 법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겉으로 평상심을 유지했지만 이 노구의 전직 재판관은 속으로 많이 울고 있었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지난달 2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정권에 우호적인 판결을 선별해 청와대와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문건을 만들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거래시도를 위해 판결들을 나중에 취합했을 뿐 재판에 관여한 정황은 없다"고 했다.
논란을 증폭시킨 사람이 현재의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그는 조사단이 "형사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는데도 "고발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해 불을 지폈다. 김 대법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인터뷰 하기 하루전 31일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사과했다. 과거 대법원의 과오를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현직 대법원장이 재판거래가 있었다는데, 현직 대법원장이 형사조치를 말하는데 분노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재판에 진 사람들의 '재판무효' 주장이 속출했다. KTX 전 승무원들이 대법원 대법정에 난입하는 등 대법원 판결의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졌다. KTX 전 승무원들뿐 아니라 전교조 교사들, 통합진보당 정치인들 모두 ‘정치재판 무효’라고 외친다. 분노의 여론은 전염성이 강하다. 현직 여당 대표는 ‘양승태 구속’을 외치고 다닌다. 대법원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과거의 법원을 죽일 놈으로 만든다고 지금의 판사들이 양심판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재판관의 명예를 같이 추락시킬 뿐이다. 법원이 검찰과 같아서는 안 된다. 검찰이야 권력에 대한 충성이 흔한 일이고 그래서 충견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법원이 권력집단처럼 과거 세력을 적폐청산으로 몰아붙여 적대시하는 행태를 배운 것 같아 우려스럽다. 대법원이 이데올로기 싸움터가 돼서야 국민이 마음 붙일 데가 없어진다.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이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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