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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준칼럼› 지나치게 도덕지향화 되어가는 대한민국의 미래
  • 기사등록 2019-03-31 09:54:51
  • 기사수정 2019-03-31 11: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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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성준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겸임교수 


우리나라에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쓴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 있다면, 일본에는 교토대학 교수인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한국문화 평론서가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에서 8년 동안 유학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토대로 선비의 나라인 한국이 도덕지향성이라면 무사의 나라인 일본은 현실지향성인 나라라고 분석하였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도덕지향성을 그들의 생활과 문화 그리고 사고방식 속에서 하나하나 증명함으로써 일본인들에게 한국을 이해시키려 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한국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한국에서는 모든 정치세력이 이 도덕적 우위와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이고 있고 여기서 승리하면 권력과 부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도덕 쟁탈전은 바로 유교국가 조선시대의 산물이다. 조선시대 지식인 이미지 유형은 양반=도덕+권력+부, 사대부=도덕+권력, 선비=도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교에서는 도덕과 권력과 부는 이상적으로 삼위일체여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이 삼위일체를 동시에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인 사대부는 여당인 양반의 도덕을 공격한다. 이 공격이 제대로 맞아 떨어져 멋지게 성공하면 양반 집권세력을 전복시키고 마침내 사대부가 정권을 거머쥐게 된다. 이렇게 권력을 잡은 사대부는 과연 그 도덕적 우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인간의 본성이 탐욕적이기 때문에 절대 그렇지 못하다. 


결국에는 권력에 취한 사대부는 쉽게 귀족화하고 보수화한다. 이른바 사대부의 양반화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새롭게 등장한 사대부는 신양반(과거의 사대부)을 같은 이유로 공격하게 된다. 여기서 예외는 선비이다. 선비는 항상 핵심권력의 밖에 몸을 두고 양반과 사대부의 도덕을 싸잡아서 공격한다. 그들은 정권을 잡을 생각은 없다. 그래서 그 도덕에 상처가 없고 흠집이 없다. 


조선시대 유교정치는 바로 이런 도덕적 우위를 얻기 위한 싸움의 반복이다. 조선 말기에 이를수록 이런 싸움이 더욱 심해졌다. 이 유교정치의 역동성 때문에 조선이 세계적으로 드문 이씨 500년 왕조를 이어 올 수 있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망하기도 하였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나서야 조선은 국제질서의 변화를 자각하고 망연자실에 빠졌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나서 그 도덕지향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현실지향성만을 앞세워 강제적으로 근대화·일본화하려 하였다. 그렇지만 도덕지향성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조선의 민족적 자존심만 손상시켜 결과적으로 항일운동·반일감정만 고양시켰다. 광적인 일신교(천황제)와 열등한 다신교(애니미즘)를 동시에 신봉하는 현실지향성의 일본으로서는 도덕적 명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조선을 완전히 굴복시키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다른 식민지 경험 국가들과 달리 고유한 언어와 민족적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도덕지향성은 과거지향성과 일맥상통한다. 그러기에 한국은 역사에 집착하고 한국인은 첨예한 역사의식으로 몸을 무장하려 한다. 무려 80년이 지난 일본군위안부나 강제징용자 문제를 두고 끊임없이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일본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 현대사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이런 도덕지향성을 내려놓고 현실을 지향한 시대가 있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산업화 시대이다. 그는 경북 선산의 몰락한 양반가 후손인 박성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일본이 황국신민화와 대동아공영을 위해 세운 대구사범학교와 만주군관학교를 다녔다. 그 후에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복무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 도덕보다는 현실을 지향하는 일본문화가 자연스럽게 체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바로 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체득한 일본의 현실지향성 덕분에 산업대국의 기초를 닦았고, 오늘날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유일한 나라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구 5,000만 이상의 국가로서 국민소득 3만 불을 달성한 일곱 번째 나라가 되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산업화를 넘어 민주화 시대를 연 이후 지나치게 도덕지향적이고 과거지향적으로 되어가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성리학적 소중화주의에 매몰되어 냉혹한 국제정세의 변화를 외면했던 조선 말기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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