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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매국적 보도” 비판에 중앙 사설 “해국 행위”반박
  • 기사등록 2019-07-18 11:15:42
  • 기사수정 2019-07-18 14: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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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18일자 사설에서 “청와대의 편협한 언론관은 해국행위”라고 정면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청와대를 향해 “독선(獨善)의 굴레에서 벗어나라”며 “언론이 입 다물고 눈치를 보는 것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가 17일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일본어 번역판 기사에 대해 매국적, 반(反)국익적이라고 비판한 데 대한 반박성 사설이다.



중앙일보는 사설 ‘언론이 정부 비판하면 ‘매국’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미국 언론 워싱턴포스트의 월남전 보도를 제시한 뒤 "어제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를 향해 '무엇이 한국과 우리 국민을 위한 일인지 답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조국 민정수석도 두 언론사 보도물 일본어 번역판의 제목을 문제 삼는 페이스북 글을 올리며 ‘매국적 제목’이라고 비난했다"며 청와대 비판을 거론했다.


사설은 그러면서 "고 대변인과 조 수석이 예로 거론한 중앙일보 칼럼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은 반일 감정이 앞서 역사적 사실도 왜곡하는 우리 사회의 일부 지식인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두 달 전에 나온 이 글은 일본이 아무리 미워도 사실을 사실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일본어판 제목은 ‘무조건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한국’이라고 돼 있다. 원래의 제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설은 이어 "고 대변인은 이런 글 때문에 일본인들이 한국 국민의 일본에 대한 여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은 일본어 번역판 사이트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이 사이트에는 한국 정부 비판 내용뿐 아니라 ‘일본의 치졸한 경제 보복 현실화되나’ ‘명분·실익 모두 없는 일본의 무역 보복 당장 거둬야’ 등의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도 번역돼 게재돼 있다"고 강조했다. 


사설은 "고 대변인은 국가적 위기 상황이니 언론이 한국 정부를 비판하지 않아야 국익이 커진다고 믿는 듯하다. 편협한 시각과 사고가 걱정스럽다"면서 "청와대의 고위 공직자가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언론관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해국(害國)’ 행위"라고 비판했다. 


사설은 또한 "그리고 무엇이 국익을 위하는 것인지를 정치권력인 청와대가 판단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독선(獨善)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며 "잘못된 정책으로 가는 정부를 보고도 언론이 입 다물고 눈치만 보는 게 과연 국익을 위하는 것인가. 중앙일보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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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18일자 사설] 언론이 정부 비판하면 ‘매국’인가  


영화 ‘더 포스트’(2017년)에는 베트남전의 실상을 알린 워싱턴포스트와 미국 정부의 갈등이 묘사된다. 이 신문이 보도한 전쟁 상황은 미국 국방부가 국민에게 설명한 것과는 크게 달랐다. 미국 정부는 “국익을 해친다”는 이유로 보도를 막으려 했다. ‘이적 행위’라고 비판하며 법원에 보도금지 조치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법원은 권력의 일방적 판단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으며,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 보장돼야 한다며 워싱턴포스트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언론의 노력으로 미국 정부의 실책이 널리 알려졌고, 결국 미국인들은 이후 더 좋은 정부를 갖게 됐다. 워싱턴포스트가 미국의 국익을 해쳤다는 것은 상식적인 사람들은 절대로 수긍하지 않을 주장이다. 

   

어제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를 향해 “무엇이 한국과 우리 국민을 위한 일인지 답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일 갈등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보인 두 언론사의 보도물이 일본어로 번역돼 일본에 소개되고 있어 한국과 한국 국민에게 해로운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게 고 대변인 주장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이에 대해 “국익의 시각으로 바라봐 주시길 바라는 당부의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조국 민정수석도 두 언론사 보도물 일본어 번역판의 제목을 문제 삼는 페이스북 글을 올리며 ‘매국적 제목’이라고 비난했다. 

  

고 대변인과 조 수석이 예로 거론한 중앙일보  칼럼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은 반일 감정이 앞서 역사적 사실도 왜곡하는 우리 사회의 일부 지식인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두 달 전에 나온 이 글은 일본이 아무리 미워도 사실을 사실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일본어판 제목은 ‘무조건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한국’이라고 돼 있다. 원래의 제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 대변인은 이런 글 때문에 일본인들이 한국 국민의 일본에 대한 여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은 일본어 번역판 사이트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이 사이트에는 한국 정부 비판 내용뿐 아니라 ‘일본의 치졸한 경제 보복 현실화되나’ ‘명분·실익 모두 없는 일본의 무역 보복 당장 거둬야’ 등의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도 번역돼 게재돼 있다. 

   

고 대변인은 국가적 위기 상황이니 언론이 한국 정부를 비판하지 않아야 국익이 커진다고 믿는 듯하다. 편협한 시각과 사고가 걱정스럽다. 청와대의 고위 공직자가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언론관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해국(害國)’ 행위다. 그리고 무엇이 국익을 위하는 것인지를 정치권력인 청와대가 판단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독선(獨善)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잘못된 정책으로 가는 정부를 보고도 언론이 입 다물고 눈치만 보는 게 과연 국익을 위하는 것인가. 중앙일보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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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시선]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 /중앙일보 5월10일자 



어벤져스 엔드게임’ 열풍 속에 2016년작 ‘안도 타다오’가 조용히 개봉했다. 고졸의 권투선수 출신으로 이미 1995년에 건축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안도 다다오(77)의 다큐멘터리다. 나오시마의 지추(地中)미술관, 제주 유민미술관 등을 가보곤 안도 다다오에 대해 꽤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주말 영화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 위상이 훨씬 대단해서다. 일본에서는 말 할 것도 없고 콧대 높은 유럽에서도 그의 존재는 도드라진다. 1677년 지어진 유서 깊은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 리노베이션을 유럽 건축가가 아니라 안도 다다오에게 맡길 정도니 말이다.


안도 다다오가 워낙 탁월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여기엔 일본을 향한 유럽인들의 경외심도 깔려 있다. 안도 다다오라는 이름에 일본이라는 브랜드가 결합해 매력이 극대화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서구의 일본 사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는 청춘의 필독서이자 이젠 방탄소년단(BTS)에 영감을 준 책으로 더 유명한 『데미안』(1919년작)에 ‘키 작은 멋쟁이 일본인’을 데미안의 동행자로 등장시키며 일본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헤세처럼 일본에 매료된 근대 유럽 지식인과 예술인은 셀 수 없이 많다. 고흐를 비롯해 19세기 유럽 화가들이 일본 전통 목판화인 우끼요에(浮世繪)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건 널리 알려진 바다.


그리고 이같은 서양의 일본사랑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문화에서 산업으로, 또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히려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성수동에 긴 줄을 만들었던 ‘커피업계의 애플’이라는 블루보틀, 그리고 그냥 애플 둘 다 미국인 창업자가 일본에 매료돼 제품에 일본 혼을 녹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한국사람들이 쉽게 말하듯 일본이 단순히 돈으로 세계인의 환심을 사온 게 아니라 문화적 깊이와 경이로운 장인정신으로 세계인을 매료시켜왔다는 얘기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프리즘만 거치면 일본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된다. 아무리 털기 어려운 구원(舊怨)이 있다지만 한국의 높은 문화적 수준을 저 발치 아래로도 따라올 수 없는 야만의 나라로 기어이 만들고야 만다. 눈만 질끈 감는다면 좋으련만 일본을 비하하기 위해서라면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식이다. 헤세가 『데미안』에 멋쟁이 일본인을 등장시켰던 바로 그 해인 1919년에 있었던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유명 한국사 강사인 설민석씨는 한 TV예능에 출연해 일제의 석굴암 훼손을 비난했다. “석굴암은 수학·기하학·과학의 완벽한 결정체로 1000년 넘게 완벽하게 보존돼 왔는데 일본이 질투가 나서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발라서 훼손시켰다”는 것이다. 기록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1912년 대규모 보수공사에 들어갈 당시 석굴암은 천장이 무너져 흙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일본으로선 문화유산을 살리려고 당시로선 최신기술인 시멘트를 써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방송 이후 일본은 질투에 눈이 멀어 석굴암을 훼손한 야만국가로 한국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자료 한 번 들춰보면 탄로 나는 명백한 역사 왜곡인데도 설씨나 방송사가 사과는커녕 정정을 했다는 말은 못 들었다. 사실 별로 놀랍지 않다. 한국에서 ‘닥치고 반일(反日)’은 늘 이렇게 면죄부를 받아왔다.


다만 설씨의 석굴암 발언을 그저 예능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게 문재인 정부 들어 반일 선동이 도를 넘어서고 있고, 방송이 그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올해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빨갱이와 색깔론은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며 반일이라는 관제 민족주의(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깃발을 대놓고 흔들고, 여당인 민주당은 한 재야 사학자의 ‘토착 왜구’ 발언을 옳다구나 하고 반일 장사에 써먹고 있으니 방송이 이리 막 나간다.


사실을 외면한 우리만의 이런 ‘정신승리’가 조선 건국 이래 최악의 전쟁으로 이어진 조선통신사의 오판과 뭐가 다를까. 1592년 황윤길 정사는 “왜적의 침범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으나 똑같은 걸 보고 온 김성일 부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눈은 쥐와 같아 두려울 게 없다”며 선조의 판단을 흐렸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백성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닥치고 반일’은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좋을지는 몰라도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다. 임진왜란,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때 그렇게 당하고도 우리는 사실을 사실대로 봐야 한다는 그 단순한 상식조차 배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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