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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대 심재철, 39년 전 ‘밀고자’ 진실 공방 - 심 "학우들 행적 기록한 유시민 자술서" 공개, 유 "비밀조직은 지켰다" 해… -
  • 기사등록 2019-05-03 23:03:54
  • 기사수정 2019-05-08 11: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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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봄 서울역 회군을 할 당시 심재철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고 유시민은 같은 총학 대의원 의장이었다. 39년이 지난 오늘 두 사람은 적대적인 관계가 돼 ‘유시민의 학생운동권 동료 밀고’를 두고 며칠째 진실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유시민(60)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심재철(61) 자유한국당 의원(5선)은 서울대 학생 운동권 출신이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던 동지이자 친구였다.

유시민 이사장이 당시 교도소에서 고문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진술서를 통해 동료들의 명단을 밀고했다는 게 심 의원 주장이고 유 이사장은 “비밀조직을 지켰다”고 반박하고 있다.  

쟁점은 두개다. 

 



 (1)진술서 작성 시점


 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1980년 7월 중순 이후에 쓴 거로 보인다. 심 의원이 잡혀 온 6월 30일 이후 합수부에 재차 불려가 심 의원이 진술한 내용에 맞춰 자술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유 이사장 진술서엔 ‘1980.6.12 자술인 柳時敏(유시민)’이라는 자필이 남아있다. 심 의원의 자필 진술서 작성 시점은 ‘1980.6.30’으로 적혀있다. 유 이사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 


(2) 밀고 여부 


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학생운동가 수칙에 따라 진술했다”며 “첫째, 학내 비밀조직과 써클을 감추고 모든 일은 학생회에서 한 것으로 진술. 둘째, 정치인들과 묶어 조작하는 것에 휘말리면 안 된다. 특히 김대중 총재와는 절대 얽히지 말 것” 등을 강조해왔다.    

심 의원이 공개한 유 이사장의 진술서엔 당시 운동권 내 여러 단체명과 모임명은 물론, 학생 운동 관련 인사 77명의 이름이 실명 그대로 적혀있다. 

또 “‘민청협’(민주청년협의회) 회장이고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사회학과)”이란 표현도 등장한다.    

유 이사장은 “(당시) 비밀조직의 전모가 거의 몽땅 다 들어가 있었는데, 거기에 ‘유시민 경제78 농촌법학회’가 딱 나와 있었다. 그래서 봤더니 우리 친구들 진술서였다”고 말했다. 농촌법학회 동료들이 자신을 밀고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심 의원은 “유 이사장 진술서에는 농촌법학회 핵심 인물들이 2명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즉 유 이사장이 먼저 농촌법학회 동료들을 누설했다는 게 심 의원의 주장이다. 



사진=jtbc캡쳐



심재철 의원은 6일 자신의 블로그에 유시민 이사장이 ‘1980년6월12일 자술인 柳時敏’이라고 쓰고 지장을 찍은 자필진술서 사본을 전면 공개했다.    

심 의원의 공개한 유 이사장의 진술서는 80쪽 분량이다. '치안본부'라는 문자가 찍혀 있는 용지에 작성됐다. 현재의 경찰청은 1980년 당시엔 치안본부였다. 

 심 의원은 "1980년 6월 11일의 유시민 진술로 인해 행적이 소상히 밝혀진 77명 학우 가운데 미 체포된 18명은 그의 진술 직후인 6월 17일 지명수배됐다. 그중 15명은 심재철의 유죄를 입증하는 합수부 진술을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시민이 당시 고문을 견뎌가며 학우들을 지켰는지, 상세한 검찰 측 참고인 진술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방송을 통해 문장력을 뽐낼 만큼 진술서가 국민 앞에 당당한 내용인지는 이번에 공개되는 진술서 전문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유 이사장은 1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 번외편 '1980년 서울의 봄 진술서를 말할레오'를 통해 당시 7월 이후에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가 추측하기에 (심 의원이 문제 삼은) 그 진술서는 최소한 7월에서 7월 중순 이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6월 30일에 심 의원이 잡혀온 뒤 자신이 합수부에 다시 불려갔고, 심 의원이 진술한 내용에 맞춰 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 의원은 블로그에서 "자신의 행적을 미화하는데 꺼리낌 없는 유시민은 본 의원의 진술서를 공개하라고 했다"며 "그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서 1980년 당시 심재철이 자수했고 어떻게 형집행정지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심 의원은 이에 대해 "본 의원은 당시 6월30일 자수했고, 2심 재판 후 피고인 24명 중 7번째로 형집행정지로 석방됐고 이어 군에 강제징집 됐다"며 "당시 본인에게는 현상금 백만원과 일계급 특진이 걸려있었고 숨겨 주거나 도피를 도와준 사람도 계엄법과 형법으로 처벌하겠다는 계엄공고가 내걸렸다"고 반박했다.

그는 "유시민은 그의 진술서에서 나를 78번 언급하며 내 공소사실의 90%를 입증해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판시됐지만 유시민은 불기소로 석방됐다"며 "본 의원은 수사관의 고문과 협박 속에서도 유시민의 이름을 '회의에 참석했다'고 단 한번 거명했다"고 해명했다.


심 의원은 “유시민의 이름이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는 1985년의 ‘항소이유서’가 국민들 상당수에게는 80년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오인되고 있다”며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민간인에게 폭력을 가한 1985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의 주범으로 유시민이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나서 썼던 글이다. 항소심에서 형이 줄어 그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살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유시민은 항소이유서에서 80년 당시에 영문도 모른 채 공소취하로 석방되어 48시간만에 군대 강제징집 되었다고 썼지만 실제로는 1980년8월 20일 불기소로 석방되어 2주 후인 9월 4일 군에 입대했다”고 밝혔다.


심재철의원이 6일 블로그에 공개한 유시민 진술서 사본.




윤호중도 가세


서울대 학생운동권이었던 윤호중 민주당 의원이 7일 유시민 이사장 편에서 가세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고 문익환 목사, 이해찬 대표, 설훈 최고위원 등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투옥시킨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유죄판결에서 핵심법정증언이 바로 형(심 의원)의 증언임이 역사적 진실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을 어찌 형만 부정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심 의원은 “내가 체포되기 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은 다른 피고인의 자백으로 완성돼 있었다”고 반박했다. 



유시민 "그렇게 진술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이해주길 바래"


유시민 이사장은 "심 의원이 나한테 없는 진술서를 공개한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생각도 없다"면서 "이 모든 일을 학생회 간부가 다 한 것으로 진술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 점만 이해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학생을 사주해서 시위를 일으키고 그 혼란을 틈타 정권을 잡으려 했다는 게 당시 조작의 방향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아무런 배후 없이 대규모 시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납득시키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학내 비밀조직을 '배후'로 언급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이미 노출된 학생회 간부 등의 명단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허위 진술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다.




진술서 공방은 4월20일 유 이사장이 방송에 출연해 민주화 운동 당시를 회고하면서 본의 아니게 시작됐다.

KBS 2TV ‘대화의 희열’ 4월20일 방송분에서 유 이사장은 1980년 5월17일 계엄법 위반으로 잡혀가 두 달간 계엄사 합수부 조사실에 갇혔던 과거를 끄집어냈다. 

제작진과 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교도소 생활을 ‘미화’했다.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 주모자로 몰려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뒤 쓴 ‘항소이유서’ 필력을 극찬하는 과정에서 1980년 교도소 독방 생활 덕분에 ‘명문’이 탄생했다는 식이었다. 

하루에 100쪽 가까이 진술서를 쓴 일도 소개했다. 유 이사장은 "진술서 용지에 하루에 100장 (가까이) 쓴 적 있다. 편지지처럼 줄이 쭉쭉 그어져 있는 진술서에 볼펜으로 100장을 썼다"며 "안 맞으려고 어떻게든 분량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1980년 교도소 생활 당시 조사 과정에서 유 이사장이 “감출 것은 다 감췄다”며 “진술서를 잘 써서 비밀조직을 지켰다”고 주장하면서 커졌다. 

방송을 본 심 의원이 참지 못하고 “유 이사장이 계엄사령부 합수부에서 작성한 진술서가 동료 77명을 겨눈 칼이 됐다”고 강력 비판하면서 밀고자 논란이 본격화된 것이다. 

심 의원은 “유시민 이사장의 당시 피체(被逮) 상황이 신군부에 상세 좌표를 찍어줄 만큼 절박했었는지 궁금하다. 80년 동료들에게는 겨누어진 칼이 된 진술서에 대해 유 이사장은 ‘수사국장도 감동시킨 문장력을 발견한 계기였다’고 공영방송 전파를 통해 자랑했다”고 비판했다. 




이후 일요신문이 김대중 전 대통령, 이해찬 민주당 대표, 김부겸 전 장관 이름이 나오는 유 이사장의 1980년 당시 진술서 일부를 공개하면서 파장이 확산됐다. 


1980년 신군부에 저항한 서울의 봄 시위 모습. 사진=jtbc캡쳐



유 이사장이 5월1일 유튜브로 해명에 나서야 했다. 약 1시간짜리 영상에서 유 이사장은 KBS 방송에서와 마찬가지로 “감출 것은 다 감췄다”며 “500명 가까운 수배자 명단이 발표됐는데 서울대 사람이 많았다. 저희 비밀조직의 구성원은 단 1명도 명단에 올라가지 않았거든요”라고 했다. 심 의원이 이 사안에 시간을 쏟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요시찰 대상이었던 자신이 일병 첫 휴가를 나와 또 다른 요시찰 대상이었던 일병 심재철의 군 면회를 갔으며 거기서 휴가를 같이 보낸 사실을 끄집어내며 둘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유 이사장은 되레 논란이 된 부분은 오히려 심 의원이 먼저 합수부에서 작성한 진술서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심 의원이 3일 재반박했다. 심 의원은 안형환 전여옥 전 한국당 의원의 유튜브에 나와 “유시민 씨가 진술한 탓으로 영향으로 보이는데 나중에 17명이 곧바로 6월 17일 날 지명수배가 된다”며 “또 유시민 이사장의 진술서는 내가 체포되기 전에 작성됐으며 고문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수사팀에 줬다”고 주장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유 이사장이 당시 학생회 명단을 진술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에 유 이사장 지지자들은 고문한 합수부가 역사의 죄인이지 공개된 학생회 조직을 진술한 게 무슨 잘못이냐고 유 이사장을 옹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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