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초기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지지율이 점차 떨어지면서 보수권이 꿈틀대고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의 장본인인 홍준표 전 의원이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보수몰락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비난받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였다. 비박의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이 친박의 중간보스이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를 면회하고 다른 친박 의원들과도 회동하는 등 통합행보를 늘리고 있다. 보수분열의 한 축인 유승민 의원이 아직까지 인위적 보수통합에 소극적일 뿐 큰 줄기에서 통합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그럼 이렇게 하면 과연 보수는 살아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전히 부정적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보수란 진보의 반대되는 뜻으로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수구꼴통으로 오해받거나 뭔가 고리타분하고 꼰대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주의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전통을 지키고 현상을 잘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하자는 것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생각과 일치하는 사상이다.
경제 이데올로기로는 분배와 정부개입에 방점을 두는 사회주의나 큰 정부보다, 성장과 시장경제에 방점을 두는 자유주의나 작은 정부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관점에서 흔히 전자를 좌파라고 한다면 후자, 즉 보수주의를 우파라고 칭하기도 한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민족분단에 대한 입장에 있어 적극적 통일론자 혹은 북한과 대화를 우선시하는 쪽이 진보·좌파이고, 통일보다는 자유민주 체제수호가 우선이고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을 경계하는 쪽이 보수·우파로 분류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이 지켜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통칭되는 자기 희생정신이다. 근대국가의 발전과정에서 보수주의의 뿌리는 왕당파나 유산자계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혁명파나 무산자계급의 거센 도전 속에서도 보수의 가치를 면면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영국 최고의 사학명문 이튼 칼리지 교내의 교회 건물에는 전사한 졸업생의 명단이 새겨져 있는데 1·2차 세계대전을 통 털어 1,905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제야 무너진 보수를 살리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과연 이런 정신을 지킨다고 내세울만한 정치인 또는 정신적 지주가 누가 있는지 묻고 싶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품격이다. 보수 정치인이라면 뭔가 말에 있어서나 행동거지에 있어서 남다른 품격이 묻어나야 한다. 돼지 발정제 같은 것이야 젊은 시절 호기로 봐 줄 수 있다고 하지만 당 대표라는 사람이 쏟아낸 막말을 보고 누가 보수를 지지하려 하겠는가? 진흙탕판 정치에도 최소한 지켜야할 도리가 있고 품격이 있다. 보수정치인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사진)는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수많은 어록을 남기며 보수정치인의 품격을 보여 주었다. 현재 정치판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런 정치인이 없다.
보수를 살린다고 상대편의 주특기인 알량한 정치공학에 기대거나 정치적 퍼포먼스를 흉내 내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채성준(단국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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