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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약속’에서 박신양은 최고의 싸움꾼이 되는 길을 가르쳐준다. “싸움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전도연) “즐겨야 해요.”(박신양) “때리는 걸요?”(전도연) “아뇨, 쥐어 터지는 걸요.”(박신양) 

시라소니 이후 맞짱 근접전에서 최고의 주먹으로 불린 방동규의 지론. “운동을 하다보면 아주 참기 힘든 순간이 5분 남짓이야. 그 순간을 이기면 그 다음은 쉬워져. 전기고문도 마찬가지고 죽음도 마찬가지 일거야. 전기고문도 한 5분 정도 참으니 그냥 찌릿찌릿했어. 고통은 금방 지나가. 먹물들이 미리미리 머리로 생각하는 두려움 그게 공포지.” 



젊은 시절의 JP. 선글라스에 바둑돌이 비친다. 

김영삼 정권 때 토사구팽된 김종필(1926~2018)은 정치판에서 잘 맞는 게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김영삼 대통령과 측근 최형우 장관 등은 신한국당 창당을 기획하면서 김종필 거세 작업에 나섰다. 김종필은 당시 집권 민자당 대표였다. 

김종필은 한국 특유의 대중 정서와 여론의 흐름을 꿰뚫고 있었다. 한국적 정서는 강자와 약자가 싸우면 정당성을 떠나 약자 편을 드는 속성을 갖고 있다. 김종필은 출신지인 충청에 대한 지역정서를 적절히 부추겨 저항의 근거지를 마련해놓고 언론을 상대로 김영삼의 배신자적인 행동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서서히 판돈을 키웠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다. 전화위복 한다는 것, 말은 쉬우나 행동은 어렵다. 오랜 권력을 누린 김종필이 그 상황에서 “누릴 만큼 누린 내가 무슨 욕심이 있으랴”며 타협하려 했다면 김영삼 정부에서 그의 정치인생은 끝났을 것이다. 김영삼은 그저 JP가 좋아하는 골프나 죽을 때까지 치게 해주었을 것이다. 

김종필은 싸우는 길을 선택했다. 그의 장점은 부드러움이다. 잘 맞을 줄 안다는 의미다. 상대의 공세를 부드러움으로 제압할 줄 알았다. 바로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신기다. 밀면 당기고 당기면 미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유도를 하는 김종필은 그 원리를 터득하고 있었다.

 

맞는 것도 잘해야 한다. 남들이 보기에 너무 불쌍하다고 느껴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맞아줄 줄 알아야 한다. 적개심을 유발해 자신의 세력을 뭉치게 하는 효과가 있어야 의미가 있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로 맞는 것은 바보짓이다. 반전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피할 수 없는 수세국면을 탈피해 기회를 찾기 위한 과정이다. 여론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공세의 타이밍을 찾으려면 상대의 힘을 부드럽게 이용해야 한다.  

당황한 김영삼 정권은 시나리오에 맞춰 더욱 조급하고 강하게 김종필을 압박했다. 그럴수록 김종필은 충청의 대안이 되고 김종필의 거세 작업은 더욱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집권세력의 압박 속에 김종필이 명예박사학위를 받는다는 명분으로 미국 시애틀 방문길에 오르자 주요 언론이 모두 수행할 정도였다. 

김종필은 불쌍한 피해자로 자신을 꾸미는데 성공했다. 지지기반인 충청뿐 아니라 김영삼의 강공에 거부감을 가진 TK(대구 경북) 주민은 1996년 총선에서 김종필을 대거 지지했다. 김종필이 창당한 자민련은 15대 총선에서 무려 50석을 얻었다. 국회 3당의 캐스팅보터로서 지위를 확고히 했다.

김종필은 제 2의 전성기를 스스로 열었다. 여세를 몰아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박태준과 777트리오를 꾸려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는 내각의 반을 임명하는 공동정부의 총리가 됐다.


김종필은 민심을 다루는 데 고수였다.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절체절명의 1996년 총선 현장에서 자신을 내쫒은 김영삼을 공격하면서도 비수는 속에 감춰두고 이렇게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인생의 행복은 미운 놈 죽는 것 보는 거다. 여러분이 작은 나의 소망이 이뤄지도록 도와 달라.” 이런 유머스러운 읍소로 유권자에게 정서적으로 통하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유민주연합의 당대표 국회연설은 압권이었다. 그는 자신을 내쫒은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깍듯하게 예의를 다했다. “사랑엔 후회가 없습니다.” 연설문 마지막 이 한 문장으로 김종필은 정치 10단의 경지에 올라섰다. 자신을 내쫒은 자에 대한 통렬한 복수의 언어를 이렇게 멋지게 할 줄 안 사람이 김종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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