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 졌다. 한국영화의 최고 스타였던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폐암으로 4일 오전2시반 별세했다. 향년 81세.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고 신성일은 3일 저녁 일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시 호흡이 돌아온 뒤 몇 6시간 여만인 이날 새벽에 끝내 하직했다. 그는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12월부터 전남 한 의료기관에서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은 지난 3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해 “내가 원하지 않는 게 몸 안에 들어왔으니 쫓아버리겠다”고 강한 투병의지를 밝혔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잔잔한 애정을 보였다. 올해 10월초에는 건강악화에도 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늠름한 모습을 보였다.
신성일은 1960년대 이후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최고 스타다.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이후 '맨발의 청춘'과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수많은 영화를 히트 시키며 국민 배우 반열에 올랐다.
1964년엔 당대 최고 여배우였던 엄앵란(82) 씨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고인은 3수 끝에 2000년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4년 간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옥고도 치렀다.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옥외 광고물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의정부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2007년 특별사면됐다.
부인 엄앵란은 올해 초 채널A ‘뉴스TOP10'과 인터뷰에서 “신성일이 초라하게 죽을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특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병원비를 다 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톱스타들이 초라하게 죽었던 옛날 시대에 살았다. (신성일은) 그렇게 죽으면 안 된다”며 마지막 애정을 드러냈다.
딸 강수화에 따르면 신성일은 엄앵란과 1975년부터 별거 생활을 했다. 두 사람 다 30대 후반 때다.
딸 강수화 설명은 "확연히 다른 생활 습관이 이유였다"고 한다. 아버지 신성일은 새벽 6시면 잡곡밥에 싱거운 반찬으로 아침 식사를 했던 반면 어머니 엄앵란은 오후 12시에 쌀밥과 짠 반찬으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했다. 2016년 엄앵란이 유방암 수술을 받게 돼 20여 년 넘게 별거 생활하던 신성일이 집으로 왕래했다.
아버지 신성일은 지난해 이미 묏자리를 마련해뒀다고 한다. 어머니 엄앵란은 " 내가 죽으면 그냥 한강에 뿌려라"며 세상에 뭐를 남기는 것에 대해 싫어한다고 한다.
강씨는 “어머니 아버지는 결혼하면 안 될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멋진 싱글로 남았어야 했다”고 했다.
고인은 장남 석현, 장녀 경아 차녀 수화씨 등 2남1녀를 뒀다.
자유한국당 강석호 외교통일위원장이 조카다. 본명은 강신영이었으나 고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 신성일을 사용했다.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앞두고 예명을 살려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사흘 만에 대구로 이사했으며 경북고, 건국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총 524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감독으로 4편을 만들었고 제작 6편, 기획 1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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