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김대중 전 주필은 작금의 한반도 해빙을 김정은이 주도하는 판이자 남한과 미국이 33세 독재자의 계략에 놀아나는 것으로 읽는다. 핵을 포기하더라도 우리가 들어줄 수 없을 정도의 대가를 요구할 텐데 그것은 돈과 미군 철수, 한미동맹 파기 등 치명적 카드일 것으로 본다. 결국 판이 어긋나면 전쟁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자만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리더십을 걱정한다.
13일자 중앙일보 배명복 칼럼리스트는 문재인정부의 외교력을 적극 평가한다. 정의용과 서훈의 역량을 상찬하면서 둘에게 힘을 실어준 문 대통령의 주도면밀한 리더십을 부각한다. 대화의 입구에 선 김정은의 진정성을 믿을 만하며 결단이라고 판을 읽는다. 비핵화 대화가 허위임이 밝혀지면 카다피나 후세인의 운명을 면치 못할진대 거짓을 말하겠느냐는 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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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北核 폐기보다 다행한 일 없지만 독재자가 쉽게 버릴 리 萬無
천문학적 對北 지원이나 美軍 철수를 대가로 바랄 것
대화 창구 열어두되 저들의 속셈 면밀히 대비해야
분단과 동족상잔(同族相殘) 70년의 아픔을 지닌 한반도의 운명은 바야흐로 대변혁의 흐름을 맞고 있다. 그것이 분단의 연속일지, 통일일지, 또 다른 전쟁일지 누구도 모른 채 문재인·김정은·트럼프·시진핑 등의 포커게임에 이끌려 막바지로 가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바람은 우리 자유·민주 체제에 의해 남과 북이 통일이 되고 같이 번영하며 잘 사는 것이었다. 그 노력은 공산주의자들과 좌파 세력에 의해, 그리고 국제적 패권주의자들에 의해 번번이 좌절됐다. 마침내 핵과 미사일을 등에 업은 북한의 김정은이 판을 뒤집고 자신이 주도하는 쇼로 둔갑시키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건 미국 대통령이건 김정은이 대화로 나오는 것이 자신의 정치력 때문인 걸로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세상은 지금 33세 독재자의 계략에 놀아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한다면 그것보다 다행한 일은 없다. 문제는 그것이 결코 공짜일 리가 없다는 점이다. 북의 역대 독재자들이 어떻게 해서 장만한 핵인데 그것을 쉽사리 버릴 리 만무하다. 그들로서는 주변 강대 세력에 맞서는 자기들의 생명줄로 믿고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핵·미사일을 포기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확신이 없다. 지금 '정상회담 쇼'가 시간 벌기용(用)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폐기할 의지가 진정 있는 것이라면 저들이 바라는 대가는 무엇일까? 하나는 '돈'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일 것이다.
돈에 관한 한 그 액수 또는 그 액수에 해당하는 '무엇'이 얼마일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핵·미사일에 거는 저들의 자만심·자부심으로 보건대 아마도 천문학적 숫자일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을 '돈 주고 사는' 전례(前例)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그런 전례를 만들면 전 세계는 오히려 핵 확산의 길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도 그 짐은 우리가 떠안았었다. 이번에도 북핵을 '돈'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 엄청난 액수의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돈+미국(의 존재)'의 방식으로 간다면 그것은 우리로서는 단순히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존립의 문제가 된다. 북한의 요구가 ①주한 미군의 철수 ②한·미 동맹의 파기 ③미·북 수교 ④평화협정으로의 전환에까지 확대된다면 그것은 결국 대한민국에 치명적 사안이 된다.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지금 미국 내의 일부 여론은 미국이 언제까지 동북아에 붙들려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북핵이 제어되면 더 이상 한국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여론이 힘을 얻을 것이다. 어차피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동해를 경계로 해서 일본을 방어선으로 한 애치슨 라인을 긋고 동아시아를 중국과 공동 관리(?)하는 것이 아닌가.
서훈 국정원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주한 미군과 한·미 동맹은 북한에 양보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국정원장 수준에서 장담할 사안이 아니다. 반미 성향을 보여 왔던 좌파 정부로서는 북한이 이른바 '평화 체제'를 내걸고 '우리 민족끼리'를 고집할 때 끝까지 버틸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간의 모든 정보와 상황을 종합할 때 북한으로서는 비핵화를 '약속'하고 돈을 얻어내 북한 경제의 숨을 돌리고 나면 대한민국을 통째로 먹을 기세로 나올 것이 틀림없다. '미국 없는 한국'이라면 중국의 후원을 업고 '공산화된 대륙'을 도모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북핵 폐기 대가로 '미국'을 내주는 거래에 당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대화를 거부할 수 없다. 대화는 하되 이 대화의 골목 골목마다 무엇이 숨어 있는지, 저들의 속셈이 어떤 것인지는 가늠하고 계산해가며 가야 한다. 이 대화 모드는 궁극적으로 미·북 정상 회담에서 고비를 맞을 것이다.
트럼프는 대화를 거부했다는 비난을 듣기 싫었을 것이다. 어쩌면 트럼프는 결렬을 위해 김정은을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정은을 때리기 위한 명분 쌓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 경우 일부의 희생을 감수하는 전쟁이 불가피할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로서는 이 엄중한 시점에서 어느 한 가능성에, 어느 한 시나리오에 희희낙락할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과 대안에 대비할 의무가 있다. 마치 자신들의 정치력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양 자만하고 있는 문 정부가 그래서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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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가시권 들어온 북·미 정상회담
관건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
북한을 정상국가로 바꾸기 위해
핵포기 대결단 내렸을 수도
또 거짓이면 카다피·후세인 운명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너무 빨라 어지러울 정도다. 불확실한 요소가 아직 많지만 일단 방향은 고무적이다. 예정대로 다음달 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이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린다면 한반도 정세는 더욱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서는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중대한 분수령을 맞을 수도 있다.
평창올림픽의 모멘텀을 살려 한반도에 새 국면을 연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은 A학점을 받을 만하다. 국가가 할 일이 무엇이고, 진짜 외교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 주고 있다. 평화외교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튼 데 이어 중재외교로 북·미 대화까지 이끌어 냈다. 어려운 국내외 여건 속에서도 운전대를 잡고, 침착하면서도 끈기있게 밀고 나간 문 대통령의 외교 리더십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잘한 건 잘했다고 해야 한다.
국내 보수세력의 욕을 먹으면서도 문재인 정부는 평창올림픽에 온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극진히 대접하며 대화의 기회로 활용했다.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관철시켰다.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방남도 논란을 무릅쓰고 수용했다. 그에 화답해 김정은도 평양에 간 우리 특사단을 각별히 예우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공을 돌리는 것도 잘하는 일이다. 칭찬하는 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모처럼 스마트한 외교를 보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뛰어난 외교안보 분야 인재가 있다는 걸 확인한 것도 큰 수확이다. 문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같은 관록 있는 인물들을 발탁해 믿고 힘을 실어 줬다. 그들은 동분서주하며 지혜와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정의용·서훈 콤비는 김정은이 밝힌 비핵화 의지를 트럼프에게 전달해 북·미 정상회담 수용이라는 파격적 결과를 도출했다. 평양-서울-워싱턴에 이어 베이징-도쿄-모스크바를 돌며 주변 강대국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주도면밀함도 보이고 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 의지와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오늘의 상황은 올 수 없었다.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던 김정은이 도발을 멈추고, 대화 국면으로 돌아선 것은 트럼프가 밀어붙인 ‘최대 압박 정책’의 효과라고 봐야 한다. 한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받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믿고 북·미 정상회담 카드를 덥석 문 트럼프의 ‘무모한’ 결단도 국면 전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문재인 정부의 노력과 능력 못지않게 운도 따랐다고 봐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김정은이 밝힌 비핵화다. 김정은이 정말로 핵을 포기하는 대결단을 했는지 아닌지가 관건이다. 그토록 힘겹게 개발한 핵을 김정은이 순순히 포기할 리 없다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판단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무아마르 카다피와 사담 후세인의 비극적 최후를 보면서 핵무기야말로 자신과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보검(寶劍)이라고 김정은은 확신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올 들어 김정은이 보여 주고 있는 뜻밖의 행보 앞에서 그 확신이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정말로 핵을 포기하기로 하고, 적극적인 대화 공세에 나선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겁도 없이 트럼프에게 일대일 대결을 신청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김정은은 세계 최강대국 정상과 나란히 서는 장면만으로 국내적으로 엄청난 선전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비핵화다. 핵 문제에서 정상회담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나면 김정은은 대외적으로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가 밝힌 비핵화 의지가 거짓이거나 속임수인 걸로 판명되는 순간, 김정은은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를 피할 수 없다. 제2의 카다피와 후세인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김정은도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에게 담판을 제안한 것은 정상국가로 가기 위해 핵을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 정상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이 불가피하다. 그에 따른 정치적 위험 부담까지도 이미 다 계산하고 내린 결단일 수 있다.
정상회담이 부담스럽기는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북한과의 대화는 시간 낭비라고 하던 트럼프는 아무런 준비와 내부 협의도 없이 덜컥 정상회담 카드를 받았다.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대성공을 거둘 수 있다”며 마이웨이를 외치고 있다. 실패할 경우 트럼프도 역풍을 각오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에게 정상회담의 성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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