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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 게시판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촛불정국을 거치며 높아진 국민의 정치참여 의식과 정부 출범 초기의 높은 지지율은 청원 게시판을 사회적 이슈의 분출구로 만들었다. 청와대가 직접 답변한 청원은 순식간에 여론으로 확대 재생산되곤 하였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는 9월 11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주민 직접민주주의 강화 방안 등이 포함된 문재인 정부의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서울시도 9월 7일 직접민주주의를 행정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시민민주주의 기본조례'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히는 등 지자체들도 앞장서고 있다.
이른바 직접민주주의의 전성시대이다. 직접민주주의의 전형적인 예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진정으로 민주적이기 위해서는 전문가나 능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보통의 시민에 의해 정치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비교적 소규모의 공동체인 폴리스를 무대로 동질성이 높은 구성원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직접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시민 속에 공동체와의 일체감과 공적 책임감이 잘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플라톤이 다수의 폭민(暴民)이 이끄는 폭민정치(mobocracy)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수 빈민(貧民)이 주도하는 빈민정치(ochlocracy)라고 신랄하게 꼬집은 중우정치(衆愚政治)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우정치는 현명하지 못한 다수의 민중이 이끄는 정치라는 뜻으로 선동과 군중 심리에 의해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의 단점을 부각시킨 말이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그 폐해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였다. 선원들은 키 잡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면서 저마다 자기가 키를 잡아야 한다고 온갖 횡포를 부려 급기야는 귀 먹고 눈 어두운 선주를 홀려 놓고 배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한다. 이렇듯 어떻게 해서든 선주를 꼬드겨 배의 지휘권을 얻어내는 자를 조타술에 능한 자로 칭찬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쓸모없다고 비난한다. 참된 키잡이는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가는 안중에도 없고 정작 조타술에 능한 이는 쓸모없는 자 취급을 당하게 된다.
민주주의가 이처럼 중우정치로 변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토론과 상호 설득을 전제로 한 다수결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소수자의 의견도 존중돼야 하며 이를 통해 대중의 비합리적인 결정을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는 국민여론을 정치에 직접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주 위험한 유혹이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대의민주주의가 불가피하다. 현대 모든 민주국가에서 선거 등을 통한 국민의 기본 참정권은 보장하되 대의제 정치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이다.
직접민주주의는 중세의 마녀사냥을 연상하게 한다. 여론재판이나 선동정치와도 직결된다. 여론재판은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민재판과 판박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인류의 전범인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통해 선동정치의 무서움을 보았다. 가깝게는 남미의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등의 지도자들이 조삼모사(朝三暮四)를 미끼로 국민들을 속이는 포퓰리즘으로 선동정치를 하다가 나라를 거들 내는 것을 보아왔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운영하고 있는 국민청원 게시판을 두고 ‘직접민주주의의 창구 역할을 한다’는 긍정 평가도 있지만 ‘되레 사회갈등을 조장하거나 증폭 시킨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목소리가 큰 소수가 말없는 다수를 깔아뭉개는 형국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권능을 떨어트리고 대통령 만능주의를 조장한다는 우려도 있다. 탄핵정국에서 촛불집회 덕에 집권한 이 정권으로서는 이런 식의 직접 민주주의가 달콤한 사탕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올지 모른다. 촛불과 탄핵으로 대통령을 직접 몰아낸 경험이 있는 국민들이 언제 그 칼을 다시 들이댈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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