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길 유튜버가 8월22일 국민의힘 당대표선거의 주요 지렛대로 등장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선우정 조선일보 논설의원은 30일자 칼럼에서 “내가 국민의힘 엘리트라면 반극우가 아니라 한국 사회 88% 언더독의 보수화에 사활을 걸겠다”라고 강조했다.
이 칼럼은 ‘언더독 보수화’에 대해 “미국과 일본의 보수가 지지층을 넓힌 방법이다”라며 “우파 포퓰리즘은 죽지 않는다”고 했다.
요약하자면 ‘윤석열 지지층’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극우포퓰리즘과 싸우지 말고 절연 대신 그들과 연대하라는 주장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나 일본 아베 전 총리의 전략처럼 극우포퓰리즘을 배척하지 말고 광범위한 연대 속으로 끌어들여야 제대로된 야당행세를 할 수 있고 추후 선거를 통해 권력쟁취의 승산을 높인다는 얘기다.
‘88% 언더독’은 이재명 정부의 핵심지지층을 제외한, 주변인과 반대자들을 망라한다.
이 칼럼은 대기업 정규직노동자를 12%라고 말하면서, 이재명 정부가 만드는 세상은 이들의 천국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나머지 국민 88%를 묶어내는 것아 보수전략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칼럼은 트럼프, 아베 외 이재명 대통령의 집권전략도 반면교사로 언급한다.
그는 "포퓰리즘 아웃사이더 정치인이 부정선거 괴담, 광우병 선동 세력, 과거 주체사상 신봉자, 부동산 투기꾼, 빅테크와 재벌, 한때 ‘극우’ 소리 듣던 논객까지 엮어 사상 최강의 권력을 창출했다"고 주장했다 .
이같은 다소 ‘위험한’ 전략은 8월22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문수 전 대통령선거 후보자, 장동혁 의원에겐 천군만마의 ‘복음’이다.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출신 유튜버 전한길 (본명 전유관)씨가 당대표 후보자들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 절연 등에 대해 입장을 묻는 공개 질의서를 보내고, 절연에 반대하는 후보자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당대표 선거 출마자 중 김문수·장동혁 후보는 "당연히 응하겠다"며 연대에 적극적이다.
두 후보는 구독자 42만명에 이르는 '전한길뉴스' 유튜브 토론회 출연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다른 당대표 후보인 안철수·조경태· 주진우 의원은 '전씨가 공개 질의서를 보내오더라도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들 후보들은 부정선거론자나 ‘윤어게인’지지자들과는 절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별 이슈가 없던 국힘 당대표 선거전은 전한길의 등장과 좌충우돌 행보로 ‘윤어게인’지지자들과의 절연이냐, 연대냐는 전선이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칼럼 전문
[선우정 칼럼] 국민의힘 초엘리트들의 '반극우 연대'
우파 포퓰리즘보다
엘리트 보수주의가
먼저 망했다
내가 국힘 엘리트라면
반극우가 아니라
한국 사회 88% 언더독의
보수화에 사활을 걸겠다
국민의힘 엘리트 정치인 몇 명이 ‘반(反)극우 연대’를 결성했다. 그중 한 명은 “국힘의 극우화는 국힘의 자살, 보수의 자살, 대한민국의 자살”이라고 했다.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셈법이 있겠지만 이들이 제시한 문제는 본질적이다. 보수당과 극우, 정확하게 정의하면 보수주의와 우파 포퓰리즘의 관계는 지금 선진국 보수 정당이 안고 있는 공통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전통과 질서에 대한 존중’이다. 여기서 일탈해 전통 대신 반동, 질서 대신 폭력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극우라고 한다. 서부지법 폭력, ‘윤 어게인’ 구호 등 몇몇 행태는 극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행태는 비판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이 세력의 일부라는 점, 보다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정치적 실체가 이들의 본질일 수 있다는 점이다.
작년 말 계엄은 당혹스러웠다. 그만큼 당혹스러웠던 현상이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급성장한 탄핵 반대 시위였다. 몰랐던 힘이 갑자기 폭발한 것이다. 2월 8일 대구 집회는 좌우를 통틀어 계엄 이후 최대 규모로 커졌다. 내 주위에도 “대구로 간다”는 사람이 있었다. 공대 석좌교수, 개척교회 집사, 백수 친구까지. 그들은 극우가 아니다. 도대체 이 열기는 무엇인가. 언론은 이 현상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
현장에서 참여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혐오, 민주당의 줄탄핵에 대한 반감, 사냥개처럼 달려든 경쟁적 수사와 절차적 불의에 대한 역겨움을 그들은 말했다. 참여자는 다양했다. 기득권자로 볼 수 있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사회 변화를 따라잡는 데 허덕이는 소외된 노년, 부모 세대의 이익 독점과 강남 좌파의 위선을 증오하는 2030, 동성애 같은 현상을 문명적 타락으로 보는 기독교 보수주의자, 거대 괴물로 커진 이웃 중국을 혐오하는 체험적·이념적 반중 세력 등. 기존 계급 인식의 틀에 맞춘 좌우 논리로는 이 현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국힘 엘리트 다수는 초반 열기를 감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감지했어도 무시했을 것이다. 그들이 혐오하는 호전적 유튜버와 열성적 신봉자들이 무덤에서 퍼 올린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보는 듯하다. ‘탄핵 심판 직후 반대 시위는 거품처럼 부서졌다. 한 줌 정치 세력만 남았다. 그들을 털어내면 중도를 끌어들일 수 있다.’ 명쾌한 논리지만 간단치 않다.
보수라면 이런 세상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 트럼프가 하는 정책이 우파 포퓰리즘이다. 트럼프 재집권은 ‘백인의 미친 짓’인가. 트럼프만 사라지면 세상도 ‘정상’으로 돌아갈까. 사실 미국 보수주의와 우파 포퓰리즘의 연대는 트럼프 훨씬 이전인 1970년대 후반 시작됐다. 한국의 보수 엘리트가 칭송하는 헤리티지재단이 주도했다. 여기서 발간하는 보수의 지침서 ‘리더십 지침’ 서문은 전 모씨가 읽으면 당장 “극우” 소리를 들을 내용이다. 우파 포퓰리즘의 호전성을 그대로 드러낸, 자유 투사의 출사표 같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베의 정권 탈환과 8년에 걸친 장기 집권도 자민당 보수주의에 젊은 우파 포퓰리즘을 흡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선거에서 극우 정당의 약진은 아베 이후 리더십의 붕괴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수와 우파 포퓰리즘이 분화했고, 자민당엔 참패만 남았다. 이런 방식이 정의인지, 불의인지는 다음 문제다. 미·일 보수는 그렇게 생존했고, 진화했고, 실패했다는 것이다.
우파 포퓰리즘은 죽지 않는다. 사회 분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미국 제조업과 함께 붕괴한 애팔래치아 중산층, 기득권 부모 세대와 철저하게 단절된 일본 2030의 하류 사회. 미·일 보수당은 이들의 열등감과 상실감을 달랬다. 52시간, 주 4.5일 근무, 정년 재연장. 한국은 정부와 노조의 공동 지원 아래 대기업 정규직 12%의 천국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머지는 애팔래치아 하류 사회의 방치된 처지와 비슷하다. 내가 국힘 엘리트라면 반극우가 아니라, 한국 사회 88% 언더독의 보수화에 사활을 걸 것이다. 미·일 보수가 지지층을 넓힌 방법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포퓰리즘 아웃사이더 정치인이 부정선거 괴담, 광우병 선동 세력, 과거 주체사상 신봉자, 부동산 투기꾼, 빅테크와 재벌, 한때 ‘극우’ 소리 듣던 논객까지 엮어 사상 최강의 권력을 창출했다. 전과도, 갑질도 상관없다. 이런 정권의 지지율이 60%다. 서울법대, 서울의대 출신의 엘리트들은 이런 정치를 끝장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보다 먼저 망한 것이 그들이 신봉하는 순결한 엘리트 보수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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