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성일이 위암 말기의 병든 노인 역을 맡은 적이 있다. 8년 전 4부작 미니시리즈 ‘별 일 없이 산다’에서 였는데 한 장면이 생생하다. 신성일은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마지막 순간 바늘로 신경을 찌르는 고통을 삼키며 해변 백사장 바위 뒤로 숨어버린다. 이 장면이 젊은 애인 하희라 사이의 러브스토리보다 더 강렬했다. 남자의 아니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신성일을 보면 인생이 드라마인지 드라마가 인생인지 헷갈린다. 신성일은 지난해 7월 “폐암 3기”를 선고받았다. 선고라는 단어는 무섭다. “판사가 사형을 선고했다”라고 할 때 쓰는 그 말이다. 다시 말하면 죽기 십상이라는 의미다.
신성일은 그 때 말했다. “나는 암은 있지만 병은 없다.” 이 말은 “삶의 주인으로서 고삐를 놓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 때 그는 영화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공이 됐다.
▲ 20일 오후 `사람이 좋다` 프로그램에 나와 투병기를 소개한 신성일.
신성일의 복근은 단단하다. 마음은 더 단단하니 5번의 항암치료와 25번의 방사선 치료를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전남 광주 인근의 요양병원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다. 폐암 3기 생존율이 20%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생각이 중요하다. 신성일은 "내가 원치 않은 것이 몸에 들어왔으니 쫓아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삶을 드라마처럼 살고 513편의 영화에 출연해 살아있는 전설이지만 암투병기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신성일은 여전히 씩씩하고 쾌활하면서도 노신사의 품격을 지킨다. 20일 저녁 MBC ‘사람이 좋다’ 프로그램에서 인간 신성일을 다시 본다.
자신에게 충실한 삶은 아름답다. 머리를 흰색으로 염색하고 베토벤 곱슬 퍼머를 한 이 81살의 사나이는 폐암을 친구삼아 오늘도 ‘별 일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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