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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한의 세상읽기] 94세에 대표 겸 주필 유임된 요미우리 와타나베 - 꿈틀미디어 대표 edmad5000@gmail.com
  • 기사등록 2020-05-30 08: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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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7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는 와타나베 쓰네오 대표 겸 주필을 유임 발령했다. 

와타나베 주필은 올해 94세의 나이로 일본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 신문의 경영과 논조를 계속 이끌게 된다. 


일본 사회의 막후 실력자로 불리는 그는 말이 다소 어눌 할뿐 논리력과 설득력은 여전하다. 언제든지 아베 총리와 통화가 가능한 인물로 언론계와 정치계에 영향력을 갖고 있다.



70년간 요미우리 신문에서 활동해 온 와타나베는 학창시절에는 공산당 지부 책임자였지만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공산당에 반발하여 전향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대해서는 역사도 철학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했다. 1950년대 당시 정계 거물이던 오노 반보쿠 자민당 부총재를 지지해 그의 양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를 도왔다. 



1960년대 이후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를 도왔다. 존 F 캐네디의 대통령되는 과정을 다룬 '대통령 만들기' 라는 책을 내고 모임을 만들어 나카소네를 도왔다. 1965년 이후 와타나베는 한일 수교를 위해 오노 부총재의 방한을 기획하고 '김종필과 오히라" 메모를 단독 보도했다. 1995년 아사히 신문이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주장하고 나오자 공동개최를 지지했다. 



와타나베는 1991년 사장이 된 후에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따라서 보수 색체가 강한 신문을 만들면서 발행 부수륻 증가시켰다. 일본에서는 그가 너무 권력지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반대파들을 제거하면서 외타나베 왕국을 구축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은 아사히 신문과 마이니치 신문과 함께 일본의 3대 일간지다. 요미우리는 1874년 창간되었다. 


처음에는 격일간지였으나 1876년부터 일간이 되었으며 현재는 조석간을 발행하고 있다. 판매부수는 1000만부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요미우리라는 말은 읽으면서 판다는 뜻이 있으며 활자가 발명되기 전에 손으로 새긴 목판을 사용해 찍은 신문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 팔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880년 오자키 고요 같은 작가의 작품을 정기적으로 개재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1925년 라디오 프로그램 가이드를 개재하고 일요일 석간을 발행하기도 했다. 1934년 일본 최초로 직업 야구단을 창설했다. 이것이 지금의 요미우리 자이언트가 됐다. 1953년 일본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국을 설립했다. 이것이 지금의 NTV이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은 당시 요미우리 신문 별책에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올린 것과 1972년 김대중 납치 사건보도 등을 문제 삼아 요미우리 서울 지국을 폐쇄했다. 


1980년 한국 정부의 문교부는 요미우리 신문 한국 배포와 지국 설립을 다시 허가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의 국내 정치나 외교에 관한 중요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일본 국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 논조의 일관된 방향을 위한 지휘자가 와타나베 주필이다. 겉으로는 94세가 되어도 정신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앞으로 아무 탈 없이 신문의 논조가 유지될지 알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의 종이 신문이든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독자가 줄어들고 광고수입이 하락하면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권력과 상업의 유혹에 휘둘리며 정론 보도의 중심을 잃고 있는 신문이 많다. 


이 같은 신문 역사의 오욕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와타나베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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