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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비(法匪)란 법을 이용하여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거나 사리사욕을 취하는 간신의 무리를 말한다. 

한나라 무제 때 장탕(張湯)이 법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마천 사기 열전에 "방탕은 처리하는 안건 중에 만일 황제가 죄를 엄히 다스리고자 하는 뜻이 보이면 냉혹한 관리에게 맡겨 엄중하게 집행했고 황제가 죄인을 석방 시키고 싶어 하는 뜻을 보이면 법을 가볍게 적용하는 관리에게 맡겨 너그럽게 처리했다" 고 지적했다. 



장탕이 무제의 사치에 대해 직언한 안이(顔異)를 타인에 의해 고발하게 하고 무제의 조서를 가지고 안이를 찾아 갔다. 임금의 조서를 보고 가마를 타고 가며 바로 받들지 않고 입을 삐죽거렸다고 보고해 안이를 사형에 처하게 했다.

 이 같은 법비의 만행을 막고 충신의 간언을 바로 듣기 위해 임금이 면류관을 쓰게 했다고 한다. 명나라 왕응전은 "임금은 총명하고 지혜로우면서도 그 총명함을 드러내어 쓰지 않는다. 면류로 눈을 가려서 삿된 것을 보지 않고 옥과 솜으로 된 귀마개로 귀를 막아서 듣지 않는다. 이 둘은 다 임금의 귀 밝음과 눈 밝음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고 하였다.


신하가 조회를 서면서 혼잣말을 하거나 입을 삐죽거리거나 도리질 하는 등의 언행은 못 본 체 하기 위해서 면류관을 쓰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대 왕들이 면류관의 뜻을 무시하고 조회를 하는 곳에 몽둥이를 두어 거슬리는 소리를 하면 그 자리에서 때려죽이기도 했다. 

그로 인해 왕의 주위에는 왕에게 아부하는 간신만 두게 되고 결국 나라는 망했다. 



사마천의 혹리열전에 보면 혹리(酷吏)란 오늘의 검찰에 해당하며 그 당시 모범적인 혹리로 급암과 정당시를 소개했다. 

"급암은 성품이 거만하고 면전 반박을 잘 했으며 다른 사람의 과오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의협심이 있어서 지조를 지키고 평소 행동도 결백했다. 직언하기를 좋아해 여러 번 무제와 대신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고 했다. 



"정당시는 청렴하여 집안을 챙기지 않았다. 녹봉이나 하사품을 받으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다. 조회 때마다 무제에게 천하의 훌륭한 사람에 대해 칭찬했다. 좋은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무제에게 전하면서도 늦지 않았나 두려워했다. 이 때문에 여러 선비들이 한 결 같이 정당시를 칭찬했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정치권력의 형태가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곳에는 법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장탕과 같은 법비도 있고,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해 충성하는 급암과 정당시 같은 혹리도 있다. 



박근혜 정권 때는 조국 교수가 청와대의 조윤선과 이병기에 대해 “법비와 같은 관리다” 비판했다. 지금 문재인 정권에서는 조국과 추미애를 향해 법비와 같은 간신들이라고 쑤군댄다.

 

문제는 법비와 간신의 장막을 파괴하고 혹리와 충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권력 총수의 리더십이다. 물론 권력의 주변에 붙어 있는  목숨을 내놓고 “아니 됩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관리가 있느냐도 중요하다. 



지금은 과거 왕조시대보다 그런 권력자와 관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조국 퇴진파와 수호파로 충돌하고 윤석열 퇴출과 지지로 대립하는 것을 보았다. 

권력자가 달을 보고 해라 하면 따라서 해라 하고, 실세 관리가 사슴을 보고 말이라 하면 입을 모아 말이라 하고,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모든 개가 따라 짖고 있다. 

그 모두가 진실과 정의는 버리고 거짓과 불의를 밥 먹듯 먹고사는 법비와 간신들이 우글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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