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메뉴 닫기
왕현철의 조선이야기(18) 정도전, 유배지에서 겪은 세 가지 일화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알게 된 조선 -왕현철 우리궁궐지킴이/전 KBS PD (wangkbs@.kbs.co.kr) 2020-06-27 18:28:47


 

 태조 4년 나라에 공이 많은 신하들을 불러서 밤에 주연을 베풀었다. 태조는 술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정도전에게 “내가 왕위에 오른 것은 그대들의 힘이다. 서로 공경하고 삼가서 자손대대로 (번영을)기약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정도전은 “전하께서는 말에서 떨어졌을 때를 잊지 마시고, 신은 유배를 가서 형틀에 씌웠을 때를 잊지 않으면 자손만대를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답을 했다. 

 

정도전은 태조에게 각각 위기에 처해서 고난을 겪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도록 과거의 경험을 되새기게 한 것이다.

 

정도전은 고려 말 세 번 유배를 간다. 첫 번째는 원나라 세력을 다시 받아들이자는 이인임, 경복흥 등과 대립해서 회진현으로 유배를 간다. 회진현은 전남 나주다. 그 후 공양왕으로 부터 미운털이 박히고 참소를 당해서, 또한 정몽주 세력에 밀려서 두 번 더 유배를 간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일을 경험했는가? 그가 유배지로부터 잊지 않으려고 한 것은 무엇인가? 그의 문집 <삼봉집>에 실려 있는 세 가지의 일화를 통해서 그가 유배지를 통해서 명심하고자 한 것을 추론해 본다. 


 첫째,  정도전은 아내로부터 무능한 가장이라고 질타를 받는다. 정도전이 귀양을 가자 아내 최씨는 그 상황이 두려워서 사람을 보내서 자신의 심경을 남편에게 전하게 한다. 정도전은 그 내용을 ‘가난’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전문이다. 


“당신은 글만 부지런히 읽으시느라 집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죽이 끓는지 아는 바가 없었고, 또한 늘 경쇠를 걸어놓은 것처럼 한 항아리의 곡식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방에 올망졸망하고 춥고 배고프다고 울어 댑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라도 끼니를 마련해서 꾸려나갔습니다. 당신의 독실한 공부로 입신양명을 해서 처자들이 우러러 뵙고 집안의 영광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라의 법에 저촉되어서 이름이 욕되고 초라한 형세가 되었고, 또한 먼 남쪽으로 귀양을 가서 풍토병에 시달리고 형제들도 절망적인 상태로 빠져서 가문은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현인군자가 진실로 이러한 것입니까.”

 

남편의 성공을 바라면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아내 최씨의 절절함이 묻어져 있다. 정도전은 답을 보낸다.

“그대의 말이 참으로 온당하오. 나에게도 친구가 있어서 형제보다 그 정이 깊었소. 그러나 내가 패했으니 뜬 구름처럼 흩어졌소. 그들이 나를 근심하지 않는 것은 본래 권세로 맺어지고 은혜로서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오. 부부의 인연은 평생 변하지 않은 법이오. 그대가 나를 꾸짖는 것은 사랑해서이지 미워해서가 아닐 것이오.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이오. 이러한 이치는 허망하지 않은 것이오. 모두 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오. 그대는 가정을 근심하고 나는 나라를 근심하는 것 외에 어찌 다른 뜻이 있겠소. 각각 그 맡은 바 임무를 다할 뿐이오. 영광과 욕됨, 얻는 것과 잃는 것 이 모두는 하늘에 달려 있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닌데 그 무엇을 불쌍하다고 하겠소.”


정도전 유배지 (전남 나주시) : 정도전은 유배지서 황연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소재동기(消災洞記)를 썼다. 그 곳 사람들과 보낸 순박한 일상과 후한 인심에 대한 감사를 남겼다. 사진=네이버이미지 


둘째, 정도전은 농부로부터 공직의 엄숙함과 처세의 도리를 가르침 받는다. 정도전이 거처하는 유배지의 집은 낮고 좁고 쓰러질 듯 했다. 

그는 마음이 울적하면 들에 나가 바람을 쐬다가 농부를 만났다. 농부는 백발에 눈썹이 길고 손에는 호미를 들고 김을 매고 있었다. 정도전은 ‘농부에 답하다’는 제목을 달았다. 편집을 했다. 


정도전 : 노인장 수고하십니다.

농부 :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그대의 의복은 남루하지만 행동거지가 의젓한 것을 보니 선비가 아닌가. 조정의 벼슬아치라면 죄를 짓고 추방된 사람이 아니면 여기에 오지 않는데, 그대는 죄를 지은 사람인가.

정도전 : 그러합니다.

농부 : 무슨 죄인가. 나라의 일에 불의를 돌보지 않고 한없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죄를 얻은 것인가. 아니면 능력은 없지만 세력가에 빌붙어서 아첨을 떨며 구차한 즐거움에 취하고 승진을 했으나, 하루아침에 몰락해서 죄를 얻은 것인가.

정도전 : 그런 것이 아닙니다. 

농부 : 그러면 말과 얼굴을 단정히 하고 겸손한 척 하지만 밤에 몰래 굽실거리고 청탁을 해서 한 자리를 얻어서는 국가와 백성을 위해서 그 직책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다가 그 간사한 것이 드러나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정도전 : 그것도 아닙니다. 

농부 : 그렇다면 장수가 되어서 당파를 만들어서 배후조종하고, 평상시에는 큰 소리로 관직과 상을 주무르며 자만심 가득히 동료들을 경멸하다가 적군을 만나면 잔뜩 겁을 먹고 싸움은 하지 않고 냅다 도망쳐서 병사들의 생명을 잃고 국가의 대사를 그르쳤는가. 아니면 재상으로서 고집불통이 되어서 자신에게 아첨하는 자만 쓰며, 올곧은 선비는 내치고 나라의 법을 사적 이익으로 이용하다가 그 악행이 드러났는가.

정도전 : 그것도 아닙니다.

농부 : 그러면 나는 그대의 죄를 알겠다. 그대는 스스로 힘이 부족한 것을 헤아리지 않고 큰소리를 치고, 때를 가리지 않고 올바른 말을 하며, 지금 세상에서 옛날의 도를 사모하며,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죄의 원인이로다. 가의는 큰소리를 좋아하고 굴원은 바른 말을 좋아하고 한유는 옛날의 도를 좋아하고 관용방은 윗사람의 뜻을 어기는 것을 좋아했다. 이 네 분 모두 도를 아는 선비였지만 관직에서 쫓겨나고 생명을 단축했다. 그대는 몸 하나로 몇 가지 금기사항을 어겨서 귀양을 왔지만 목숨은 보전하고 있다. 나 같은 촌사람이라도 그 은혜가 너그러움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조심하면 화를 면할 것이오.

정도전 : 노인장께서는 숨은 군자입니다. 객관으로 모셔서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농부 : 나는 대대로 농사꾼이오. 나는 밭을 일궈서 나라에 세금을 내고 나머지로 가족을 먹여 살리오. 이 밖의 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오. 그대는 물러가서 나를 어지럽히지 마시오.

 이것으로 농부는 말문을 닫았다. 정도전은 그 농부를 장저와 걸익같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가르침을 받지 못 한 것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저와 걸익은 공자와 같은 시대를 살아서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는 것을 비웃은 은둔자이다.


 셋째, 정도전은 도깨비로부터 자신의 환경과 어울려서 사는 법을 배운다. 정도전은 ‘도깨비에게 사과하는 글’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편집을 했다. 

정도전이 유배를 간 회진은 우거진 숲이 많고 바다가 가까우면서 인적이 거의 없었다. 그곳에는 음습한 기운이 스며들며 자주 흐리고 비가 많이 왔다. 산과 바다의 음습한 기운과 나무와 풀, 흙과 돌의 정령들이 스미고 엉켜서 온갖 도깨비가 된다. 정도전은 밖에서 돌아와 피곤에 지쳐서 몸을 누이면 잠이 드는 둥 마는 둥 했고 도깨비들이 와서 가지가지 형태를 부렸다. 도깨비는 웃기도 하고 슬픈 표정도 짓고 빈정거리기도 하며 뛰기도 하고 벌떡 눕기도 하며 비스듬한 자세도 취했다. 

 정도전은 그들이 떠드는 것이 싫고 상서롭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물리치면 다시 왔다. 정도전은 몹시 큰 소리로 화도 냈다. 정도전은 말을 걸었다.

정도전 : ‘너는 음침한 물건으로서 사람도 아닌데 왜 오는 것이냐. 그리고 왜 슬퍼하고 기뻐하며 웃는 것이냐.

도깨비 : 이곳은 그윽하고 음습한 곳이나 너른 들판은 도깨비가 사는 곳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온 것이지 우리가 당신에게 간 것이 아니거늘 어찌해서 우리더러 가라고 합니까. 그리고 당신은 자신의 힘도 헤아리지 않고 설쳐서 쫓겨났으니 가소롭지 않습니까. 그대는 학문을 깊이 해서 올바른 길을 걷고자 하지만 귀양살이로 그 뜻을 펼칠 수 없으니 슬프지 않습니까. 우리는 음습한 곳에 엎드려 살아서 세상을 알지 못하는데 학문이 깊고 세상의 이치를 밝혀내는 당신을 만났으니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이제 평범한 백성보다 못한 신세로 전락해서 모두를 피하는데, 우리들은 당신이 오는 것을 좋아하고 같이 놀아주는데 우리를 버리고 누구와 같이 벗을 하겠습니까.

 정도전은 도깨비의 말을 듣고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도깨비에게 감사의 시를 남겨서 사과한다.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사는 내가 / 너를 버리면 누구와 같이 놀겠는가......” 


정도전은 유배를 가서 지위와 권력을 잃고 집은 가난에 찌들게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소중함도 얻었다. 부부의 정, 공직의 엄숙함과 처세의 도리, 이웃과의 삶. 정도전이 600여 년 전 겪은 일이다. 오늘과 무엇이 다른가.(계속) 



관련기사

과천 여성 비전센터

스토리&토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