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로 윤석열 대통령이 머리 숙여 사과했다.
대통령으로서는 밤잠을 설쳐 가며 강행군한 결과가 너무 참담했고, 희망고문을 한 부산시민과 국민들에게 미안했을 것이다.
오일달러를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의 독주에도 최소한 2차 투표까지는 갈 것이라고 예측해 막판 뒤집기를 기대했지만, 119표를 얻은 리야드에 비해 29표라는 성적표는 너무나도 초라하다.
최선을 다하고 지는 건 박수받을 일이지만, 판세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엑스포 개최지 결정을 바로 앞둔 11월 28일 에이스리서치·국민리서치그룹이 발표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1.8%는 유치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고 38.7%는 낮게 봤다.
재미있는 것은 윤 대통령 긍정평가층에서는 83.4%가 높게 전망한 반면, 부정평가층에선 10.5%만이 높게 봤다는 점이다.
지역별로도 부산·울산·경남(PK)에선 다른 지역 평균보다 10%포인트나 높은 50.1%가 높게 평가한 것으로 나타나, PK 지역민인 경우 윤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집단지성이 발휘되지 못한 채 잘못된 집단최면, 이른바 확증편향에 빠진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견해 내지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편견을 말한다.
계량적 분석에서 어떤 증거나 데이터가 사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사실이라고 해석할 때 나타나는 긍정오류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이러한 확증편향성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우익과 좌익, 영남과 호남, 심지어 성별·세대별로도 편을 갈라 상대편의 얘기에는 아예 귀를 닫고 자기의 입장만 주장하고 믿으려 한다.
여기에 진실은 전혀 무의미하고 객관적 입장은 아예 설 땅이 없다. 정보화 사회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의 경험, 정보, 지식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는 집단지성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책임은 무엇보다 정치권과 언론에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독재와 반독재, 인권과 반인권, 정의와 반정의와 같은 선악 구도라도 있어 정파적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공동전선이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까지도 양 극단으로 나눠져 서로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옛말에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날 사회지도층 인사들마저도 명백한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또 자기편이라면 무조건 옹호하기만 한다.
다시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로 돌아가 보자.
막강한 오일달러로 무장해 일찌감치 유치전에 뛰어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싸움은 애초부터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분석은 재계 일각에서도 이미 나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만 앞세운 것 자체가 국제관계의 냉혹한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한 외교적 실패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막판까지 제대로 된 정보판단을 하지 못한 채 박빙 가능성을 보고하며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한 정보당국이나 주변 참모들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역시 더 큰 문제는 유치전 당시에는 무모한 도전을 지적하지 않던 야당이나 야권 성향 언론들이 결과가 드러나자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전가하면서 비판의 칼을 들이댄 반면, 여당이나 여권 성향 언론들은 하나 같이 잘못된 첫 단추는 문재인 정부에서 꿰었다거나 실패는 했지만 얻은 것이 더 많다는 식으로 변호하기에 바쁜 확증편향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책임소재를 냉정히 가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실종되고 있다.
승패는 병가의 상사(兵家常事)라고도 한다. 다만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장수는 자격이 없다.
부산 엑스포 유치와 같은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또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인의 이런 도전정신이 세계 최빈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엑스포 유치 실패를 좋은 교훈으로 삼아 새로운 도전을 하려면 보다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국익에는 여야나 진영 논리가 필요 없다.
확증편향이나 집단최면이 아닌 집단지성이 요구된다.
윤 대통령도 우리 사회의 확증편향성이 얼마나 심각하다는 것과 자신과 물리적·화학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긍정적 시그널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