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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포럼› 경자년 가을 삼추 (三醜 )에 추색 (秋色 )이 추하다 - 박혜범 칼럼니스트
  • 기사등록 2020-09-12 09:06:57
  • 기사수정 2020-09-19 08: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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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해가 저물어 간 쓸쓸한 섬진강 강변의 풍경.


더러운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것은 , 저 유명한 기산지절 (箕山之節 )에 나오는 은둔의 선비 허유 (許由 )와 소부 (巢父 )의 고사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

 

허유는 성천자 (聖天子 )로 추앙받는 중국의 요 (堯 )임금이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그걸 들은 자신의 귀가 더럽혀졌다며 , 영천 (潁川 )의 물에 귀를 씻고 , 기산 (箕山 )에 들어가 숨어 살았는데 ......

 

소를 몰아 강에 나온 소부 (巢父 )가 허유로부터 귀를 씻는 까닭을 듣고는 , 더럽혀진 그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며 , 더 상류로 올라갔다는 고사전 (高士傳 )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며 , 대대로 중국과 한국에서 은둔한 현자 (賢者 )의 상징으로 받들었다 .

 

그리고 또 하나 촌부가 앉아있는 여기 섬진강 (옛 이름 압록강 ) 강변에서 , 옛길을 따라 한나절을 걸어가면 , 기산지절 (箕山之節 )과 같은 유형의 고사가 전해오는 동리산 태안사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울창하고 푸른 동리산 (桐裏山 )은 일찍이 옛 월 (越 )나라 동강 (桐江 )과 같은 곳이며 , 서로에게 전한 은약 (隱約 )은 오랜 세월 나라를 밝게 비추었고 , 언제나 욕심 없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신묘 (神妙 )한 법이다 .” 하였는데 ......

 

태안사가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 그 첫머리에  “일찍이 옛 월 (越 )나라 동강 (桐江 )과 같은 곳이다 .”한 것은 , 중국 절강성 (浙江省 ) 동려현 (桐廬縣 )에 있는 강 이름으로 , 후한 (後漢 )의 명제 (明帝 ) 광무제 (光武帝 )와 엄광 (嚴光 )의 사이에 얽힌 고사를 인용하여 , 왕건과 태안사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며 , “서로에게 전한 은약 (隱約 )은 오랜 세월 나라를 밝게 비추었다 .”한 것은 , 혜철국사가 은밀하게 전한 도참 (圖讖  흩어진 셋을 하나로 되돌리는 한 송이 회삼귀일의 연꽃 )은 왕건이 삼한을 통일 고려를 창업하고 , 오랜 세월 세상을 태평성대로 이끈 요결 (要訣 )이 되었고 , 고려 창업의 역사가 태안사에서 일으킨 대업 (大業 )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

 

더러운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고사가 나온 중국의 기산지절 (箕山之節 )과 여기 섬진강 강변에 자리한 동리산 태안사에 전해오는 후한 (後漢 )의 광무제 (光武帝 )와 엄광 (嚴光  엄자릉 )의 옛 역사의 핵심은 창업에 성공한 군주와 공신들의 관계 즉 오늘날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 선거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과 측근들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

 

한마디로 알기 쉽게 설명하면 , 권력을 잡기까지 애써준 측근에게 마음의 빚을 갚겠다는 대통령과 그것을 부질없다며 뿌리치고 은퇴하여 숨어버린 측근의 이야기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

 

그런 연유로 후대의 사가들과 선비들은 보장된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숨어버린 이들을 , 다만 천하의 민생들을 위해 때에 맞추어 몸을 일으켜 헌신할 뿐 , 쓸데없이 권력을 탐하여 몸을 망치지 않은 , 진실로 어진 성인 (聖人 )과 현자 (賢者 )로 받드는 것이다 .

 

허유와 엄광 뿐이랴 . 공자 (孔子 )도 예 (禮 )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 듣지도 말며 , 말하지도 말고 , 행동하지도 말라 ”하였지만 , 예나 지금이나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 , 부질없는 정쟁에 휘말려 생의 안락을 깨트리고 싶지 않은 현인 (賢人 )들이 깊고 깊은 산과 강으로 도망쳐 숨은 것인데 , 만약 옛 현자들이 권력에 미쳐 환장을 한 부류들이 판을 치고 있는  21 세기 지금 이 가을의 대한민국에서 산다면 , 어디로 도망쳐 어떻게 숨었을지 궁금해진다 .

 

조금 전 늦은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보는데 , TV 가 보기 싫은 얼굴과 듣기 싫은 소리를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다 . 저 꼴도 보기 싫은 추색 (秋色 )을 언제까지 보아야 하는가 . 이게 벌써 몇 날 며칠 몇 달째인가 ?

 

대한민국 헌법이 필요 없는 여자 , 마님놀이로 국정을 휘저으며 , 감히 무엄하다는 둥 세치 혀로 국민들의 상식과 정의를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린 여자의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 경자년 가을 삼추 (三醜 )에 추색 (秋色 )이 추하다는 것이다 . 추해도 더럽게 추하다는 것이다 .

 

아무것도 보지 마라 .

보면 볼수록

보는 사람의 눈만 추해진다 .(더럽힌다 .)

 

아무것도 듣지 마라 .

들으면 들을수록

듣는 사람의 귀만 추해진다 .(더럽힌다 .)

 

아무 말도 하지 마라 .

말을 하면 할수록

말하는 사람의 입만 추해진다 .(더럽힌다 .)

 

막상 옛 사람들이 말한 , 더러운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더럽다 ” “추하다 ”는 말의 의미를 다시 절감하면서 , 글을 마무리 짓고 보니 , 여기 섬진강 강변에 앉아서 , 날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 눈과 귀와 입 그리고 자판기를 두들기는 손가락까지 , 이미 오래전에 더럽혀져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 처음부터 촌부임을 고백하고 살아왔기 망정이지 어쩔 뻔했냐며 , 내가 나에게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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