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화렌(花蓮) 여행을 떠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날씨였다.
출발하기 전 나흘 연속 비가 오거나 흐림이 예보됐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한국의 연말연시 추위를 피해 남쪽나라로 가는데 비가 온다니, 발걸음이 내키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기우였다. 도착하는 날 바람이 불고 날은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고, 오더라도 잠시 이슬비 오는 정도였다. 되레 기온이 후덥지근하지 않아 선선한 느낌이 좋았다.
둘째 날 1월1일은 바람이 잠잠해졌다. 날은 흐렸고 비는 왔지만 그야말로 조금 내렸다.
저녁에 야시장을 가는데 비가 온다고 해서 우산을 들고 갔지만 괜히 들고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처럼 후두둑 내리는 비가 아니다. 잠시 오다가 사라졌다. 야시장을 둘러보는데 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대문 야시장은 먹거리와 놀거리로 가득차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맛보는 아날로그 거리였다.
어린 시절 동네 유원지에서나 보던 야구공 던지기, 화살로 풍선 쏘기, 구멍난 그물망으로 송사리 잡기 등 게임과 양 염소 돼지고기 등 육고기와 온갖 해산물, 왕 샌드위치와 음료 등이 다양했다.
한국의 TV방송 인기프로그램이 다녀간 것을 광고하는 업소도 있었다.
재미난 것은 야시장에서 술이 별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만인들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공차 같은 음료수가 인기인 이유다.
야시장 긴 골목길에 맥주집이 딱 한 집 눈에 띄였다.
셋째날 아침과 넷째날 아침은 연속적으로 아침 일출을 볼 수 있었다.
태평양 바다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올랐다. 호텔에서 보이는 태평양의 태양은 장관이었다.
붉게 이글거리면서 뜨거운 기운을 세상에 퍼부었다.
화렌시 서쪽은 산맥이다. 2~3천미터의 고봉이 깎아지른 듯 서 있다.
언제나 구름에 둘러싸여 있었다.
거기에 햇살이 쏟아져 봉우리 아래로 구름이 놀고 있으니 신세계가 따로 없다.
방문객을 놀라게 한 것은 지진이었다. 1일 새벽 2시 조금 넘어 파크뷰 호텔 침대가 흔들거렸다. 자다가 놀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한 20~30초 동안 몇 차례 침대가 요람처럼 흔들거리다 잠잠해졌다.
지진임을 직감했지만 도시는 조용하게 잠들어 있었다. 저 멀리 병원 사이렌 소리가 한 차례 났을 뿐이다.
다음날 아침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이드에 물어보자 진도가 4.8였다고 한다.
이 정도 지진엔 화렌 사람들이 별로 놀라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 지진을 많이 겪는 사람들이니 그렇다는 것이다.
가이드의 말로는 화렌시는 한 해 6.0 이상의 지진을 서너번 겪어야 한 해를 보내는구나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온 한 동반여행객도 자신은 대경실색했지만, 일본인들도 대만 화렌사람들처럼 웬만한 지진에는 꿈쩍도 않는다고 했다.
이런 말들을 들으니 이 말이 생각났다.
“나쁜 날씨는 없다. 다른 날씨만 있을 뿐이다.”
이 말은 여기서도 진리다. 이방인들에게 대만의 날씨와 지진은 걱정되고 놀랄 일이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일상사일 뿐이다.
화렌을 여행하려면 전투기가 이륙하는 폭발적 소리도 자주 들을 각오를 감수해야 한다.
이 곳 공항은 여객기가 이착륙하지만 사실 군용비행장이다. 중국과 마주 보는 대만은 산맥 뒤의 화렌에 군사기지를 많이 만들어 두었다.
전투기가 이륙할 때 내는 소리는 지축을 흔든다. 머문 호텔이 공항 근처여서 아침이나 저녁이나 수시로 전투기 혹은 전폭기가 발진하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특히 우리가 방문한 시기는 1월12일 대만총통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중국의 선거 방해 움직임에 대비하기 위해서인지 전투기 발진이 많았다.
숙소에서 해안가는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걸어가 보았지만 결국 모래사장을 밟지 못했다. 해안선 옆으로 철도가 놓여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화렌의 해변은 모래사장이 없다고 한다. 해변엔 모래가 아니라 둥글넙적한 몽돌이 수없이 깔려 있다. 파도는 덥칠듯이 밀려온다. 쓰나미에 대비해 방파제도 있다.
화렌을 한국의 속초와 비교하지만 해수욕장이 없다는 점이 차이라고 가이드는 말한다.
화렌시는 최근 물밀듯 밀려오는 한국 관광객에 놀라고 있다.
일본과 경제전쟁 여파로 일본으로 가던 한국인 발길이 베트남과 대만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인의 방문으로 관광특수를 맞고 있다.
화렌만 해도 10월달에 이스타항공 직항편이 생겼다.
이곳엔 골프장이 1920년대 일본인이 세운 것 하나 딱 있다. 화렌현 직영 골프장이다.
그동안 외국 손님이 별로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으로 가던 한국인의 발길이 이곳으로 밀어닥쳤다. 골프장에 비상이 걸렸다. 새로 신입 캐디를 고용하는 등 특수를 누리고 있다.
화렌엔 과거 중국 관광객이 휘젓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시진핑 정부가 현재 대만독립파 차이잉원 정부를 손본다며 대만관광을 사실상 금지시켰다. 직항편도 없앴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사드배치를 두고 한국에 보복하는 것과 마찬가지 횡포를 대만에도 한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홍콩시위 사태 여파로 대만선거는 시진핑이 바라는 것과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무능하다는 이유로 불리하던 현 총통 차이잉원이 유리해진 것이다.
중국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에 일본 때문에 한국 관광객이 대신 들어가고 있다.
화렌의 우리팀 가이드도 최근 다른 일을 하다가 이 일을 새로 시작했다고 한다. 전자부품 영업을 했다는 것인데 아내가 대만인이고 대만말을 잘 알고 문화에 밝은 이유로 긴급 투입됐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한국팀이 몰려 후배 가이드가 새로 투입될 것 같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착하고 성실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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