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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에세이› 서산대사와 노파가 구례읍에서 들은 한낮에 닭 우는 소리 - 박혜범 칼럼니스트
  • 기사등록 2019-12-04 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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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 일이 있어 구례읍에 나갔다가 12시 20분 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장날이라 작은 시골버스는 장을 본 노인들로 만원이었다.

 

12시 30분 쯤 버스가 구례읍 봉성산(鳳城山)을 지나 까막정 마을에 정차하자, 제 몸도 가누기 어려운 늙은 노파가, 이것저것 장을 본 보자기 몇 개를 들고 서둘러 내리는 그때, 뉘 집 닭이 우는지 닭이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노파가 하는 말이 정신없는 놈의 닭이 사람 정신 사납게 쓸데없이 한낮에 운다며 투덜거렸다.

 

노파가 한낮에 들리는 닭이 우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닭이 우는 새벽이면 이부자리를 걷고 일어나야 한다는, 평생을 몸에 익힌 습관에서 나온 것으로, 늙어 거동이 불편한 탓에 속히 내리지 못하는 자신으로 인해, 바쁜 버스가 가지를 못하고 있는 미안함에서 하는 푸념이지만, 듣고 있는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서산대사 초상화. 


1520년에 태어나서 수도에 전념하다, 말년에 백성들이 임진왜란을 극복 승전으로 이끌어가는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던, 저 유명한 휴정(休靜,1520~1604) 서산대사(西山大師)가 구례읍을 지나다 듣고, 장부의 일대사를 깨달았다는 한낮의 닭 우는 소리와, 버스를 내리고 있는 노파의 귀에 들린, 한낮에 우는 정신없는 놈의 닭이 우는 쓸데없는 소리가, 묘하게 겹친 연유로 혼자서 피식 웃고 말았는데, 다음의 글은 서산대사가 봉성(鳳城)을 지나다 낮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오도송(悟道頌)이다.

 

발백비심백(髮白非心白) 머리는 희었으되 마음은 희지 않았다고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옛 사람이 이미 말했거니

금청일성계(今廳一聲鷄) 이제 닭 우는 소리 한 번 들으매

장부능사필(仗夫能事畢) 장부의 할 일 다 했네.

 

홀득자가저(忽得自家底) 홀연히 나를 알고 보니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모든 일이 다만 이렇거니

만천금보장(萬千金寶藏) 만천금의 보장이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본래가 한 장의 빈 종이일세.

 

위 서산대사의 오도송(悟道頌) 과봉성문오계(過鳳城聞午鷄)는 봉성현(鳳城縣)을 말한 것으로 지금의 구례읍을 지나면서, 말 그대로 한낮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진면목(眞面目)을 깨달은 마음을 그대로 읊은 것인데.........

 

새벽에 우는 닭이나 한낮에 우는 닭이나, 다를 게 없는 닭의 소리일 뿐이지만, 그 옛날 선조(宣祖 1552년∼1608년)의 치세에, 저 유명한 서산대사가 구례읍을 지나다 듣고, 대장부 일대사를 깨달았다는 한낮에 우는 닭의 소리가, 오늘 구례읍 봉산을 지나는 노파에게는, 한낱 사람을 정신 사납게 하는 쓸데없는 소리가 되었으니,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부연하면 자세한 기록이 없어 알 수는 없지만, 시문에 나오는 지명으로 서산대사가 한낮의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은 위치를 추측해보면, 용성(龍城 현재 전북 남원)으로 가는 도중 지나는 봉성(鳳城)이었으니 지금의 구례읍 봉성산 동쪽을 지나 천은사 방면 즉 남원으로 가는 길 어디쯤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흔히 구례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천은사가 속한 구례군 광의면이 100여 년 전까지 남원군의 일부였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서산대사의 과봉성문오계(過鳳城聞午鷄)는 화엄사에서 출발했거나, 그쪽 길이였다면 나올 수 없는 것으로, 아마도 새벽 일찍 화개 쌍계사를 출발해서 구례현의 관아가 있는 봉산 아래 마을길을 따라 가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산대사의 오도송 과봉성문오계(過鳳城聞午鷄)는 남원으로 가기 전 그러니까 천은사가 속한 지금의 광의면을 가기 전이므로, 구례읍 봉산 동쪽 마을길을 따라가는 어디쯤이었다는 것이 합리적이고 정확한 것이다.

 

혹 이 글을 읽고 생각이 있고 인연이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 옛날 서산대사가 그랬듯이 구례읍을 거닐며 한낮의 닭이 우는 소리를 듣는 좋은 인연이 있기를 바라며, 서산대사가 말한 머리는 늙어 희었으되 마음은 희지 않았다고 옛 사람이 이미 말했다는 이야기, 주(周)나라 선왕(宣王) 22년 불기 203년, 서기 B.C.804년, 을미년(乙未年) 제3조 상나화수존자(商那和修尊者)와 그 제자인 우바국다의 문답을 여기에 전한다.

 

“그대 나이가 몇인가?”

“17살입니다.”

“그대 몸이 17인가, 성품이 17인가?”

“스승님의 머리가 이미 희니, 머리가 흰 것입니까? 마음이 흰 것입니까?”

“나는 다만 머리가 흰 것일 뿐, 마음이 흰 것이 아니다.”

“저 또한 몸이 열일곱 살이지 마음이 열일곱 살이 아닙니다.”

 

상나화수존자(商那和修尊者)는 우바국다가 장차 불법을 깨달아 전할 큰 그릇임을 알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주었다.

 

비법역비심(非法亦非心) 법이 아니면 또한 마음도 아니니

무심역무법(無心亦無法) 마음도 없고 또한 법도 없다.

설시심법시(說是心法時) 이 마음과 법을 말하는 때에

시법비심법(是法非心法) 이 법은 마음도 법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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