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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현철의 궁궐이야기 (47)인정전, 월대에서 공구수성하다 -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알게 된 궁궐 왕현철 우리궁궐지킴이, 전 KBS PD
  • 기사등록 2019-11-30 22: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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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중심 건물은 인정전이다. 그것을 단 번에 알 수 있는 것은 인정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2층으로 우뚝 솟아 있고 그 전각 아래에는 월대와 넓은 뜰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월대는 궁궐에서 왕이나 왕비의 건물 앞에 돌로 쌓은 축대를 말한다. 월대 위에 전각을 지음으로써 그 전각을 위엄 있게 돋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고, 또한 월대는 넓은 공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행사를 할 수도 있다. 창덕궁 인정전은 상·하 월대를 갖추고 있다. 


 인정전 월대에서 조선의 왕들은 많은 행사를 했다. 임금은 선대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서 축문과 향을 신하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자연의 이변현상을 두려워해서 공구수성(恐懼修省)하는 자세도 취했다. 공구수성은 몹시 두려워해서 수신(修身)하고 반성(反省)하는 것이다. 


 필자의 글은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해서 조선시대의 궁궐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전 하월대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인상적인 사진 한 장을 소개하고 본론에 들어가고자 한다.




사진 속의 두 분은 우리에게 큰 족적을 남긴 김구 주석(오른쪽)과 이승만 대통령(왼쪽)이다. 장소는 인정전 뜰에서 인정전으로 올라가는 첫 번째 계단 바로 뒤 인정전 하월대다. 

사진 아래의 계단은 답도로서 그 가운데는 태평시대에 나타난다고 하는 봉황이 새겨져 있다. 두 분은 인정전을 배경으로 해서 봉황을 감싸 안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다. 

한복과 양복을 입고 늠름하게 서 있는 자세, 평온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 그 중심에 두 분이 손을 내밀어서 잡은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생각과 방식은 다를지 모르지만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함께 염원했던 두 분의 창덕궁 동시 방문은 창덕궁 해설을 하는 필자에게는 소중한 사진으로서 소개한다. 


 조선시대의 왕은 전지전능해야 했다. 일식이나 월식, 가뭄, 천둥, 지진 등 자연의 이변현상을 임금의 탓으로 돌렸다. 임금이 부덕하고 수신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아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임금은 나라를 통치하는 모든 권한을 갖고 있지만 그 권한 만큼 백성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연의 이변현상까지도 없애거나 달래야 했다. 

농사철에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는 것도 그 방법의 하나였다.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태양은 특히 양기의 정수(精髓)로서 임금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 태양이 안보이거나 찌그러진다. 임금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조선왕조실록>에는 일식 현상을 극복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그 무대는 인정전 월대다.


 중종 12년 6월1일 왕은 소복을 입고 오대(烏帶)를 갖추고 하얀 가죽신을 신고서 인정전 월대로 나아갔다. 오대는 허리에 두르는 검은색 띠를 말한다. 일식이 일어날 예정임으로 친구(親救)를 하기 위해서다. 


구식(救食)이라고도 한다. 구식은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났을 때 임금이 월대에 나아가서 해나 달이 다시 나오기를 구하는 경건한 의식이다. 이 의식을 기록한 것을 친구의주(親救儀註)라고 한다. 

 

그 내용을 보자. 인정전 월대에 임금의 자리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라보게 설치하고 그 앞에 향로를 올리는 상을 놓는다. 월대에는 청색·붉은색·흰색의 북 3대를 각각의 방위에 따라 설치한다. 

북 안쪽에 청색·붉은색·흰색의 깃발과 무기 세 개 (동쪽은 창, 서쪽은 도끼, 남쪽은 긴 삼지창)를 세운다. 조정의 신하들은 인정전 뜰에 동서로 마주보게 서게 한다. 이 때 일식이 남쪽이나 서쪽에서 일어나면 신하들은 모두 서쪽으로, 일식이 동쪽에서 일어나면 신하들은 동쪽으로 바라보게 한다. 조정 신하들도 소복을 입는다. 


 일식이 일어나기 5각(刻), 즉 75분 전부터 병조의 군사와 신하들은 인정문 밖으로 나가서 임금을 맞이할 차비를 한다. 임금은 3각(45분)전에 선정전에서 여를 타고 나와서 인정전으로 향한다. 임금의 호위 절차는 평상시와 같다. 


임금이 인정문을 통해서 인정전으로 들어가면 신하들은 인의(引儀)의 인도에 따라서 인정문 좌·우의 옆문으로 들어와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인의는 통례원 소속으로 행사에서 의식의 순서를 알려주는 종 6품의 문관이다. 

 

임금이 인정전 월대로 올라가서 해를 향해서 앉으면 구식이 시작된다. 관상감은 일식의 변고가 있음을 무릎을 꿇고 아뢴다. 향과 북의 담당자도 소복을 입고 향을 피우고 북을 쳐서 울린다.

 관상감은 “해가 장차 먹혀 이지러지려 합니다 ” “해가 장차 많이 먹히겠습니다” “해가 장차 다시 둥그레지려 합니다”라고 해의 모양에 따른 수식어를 달리해서 외친다. “공구수성하옵소서”는 계속 붙인다. 해가 사라져서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올 때까지 이런 과정을 계속하는 것이다. 


 중종은 구식을 하는 동안 몸을 단정히 하고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해가 다시 밝아서 햇빛이 용안을 비추어도 햇빛을 가리지 말라고 했다. 임금의 삼가고 공경하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일식현상을 보다 정확하게 관찰하기 위해서 서울 남산에 담당자 2명이 올라가기도 한다. 하늘과 가까운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담당자는 일식이 일어나면 불을 붙인 화살을 쏘아서 궁궐에 알리고 인정전 월대에서 구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해가 다시 둥그레져서 구식이 끝나면 임금은 내전으로 들어간다. 


 조선시대 일식현상을 알기 위해서는 사편법, 삼편법, 대명력, 칠정산 내·외편, 회회력, 시헌력 등을 활용했으나 보는 기준은 약간씩 달랐다. 일식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관상감은 국문을 받거나 귀양 가는 일도 있었다. 관상감은 일식의 보다 더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 연경에 가서 <교식역지(7책) <융사류점(10책)을 구입해 오기도 했다.</p>

 

더욱이 정조는 일식현상을 5개월 전에 보고하도록 했다. 그 이전까지는 3개월 전이었다. 정조는 <서경(書經)>에서 ‘하늘의 이치를 삼가 따라서 일월과 성신의 운행과 도수를 살펴서 역서(曆書)를 만든다’라고 예를 들면서 천체 운행의 정확한 관측을 강조했다. 그만큼 더욱더 자연에 대해서 공경하고 삼가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창덕궁 인정전. (국보 제 225호) 

 


선조23년 1590년에는 일식이 두 번, 집이 흔들릴 정도의 지진이 한 번 있었다. 

선조는 일식과 지진이 겹쳐 일어난 것은 하늘의 경고로 봤다. 선조는 자신의 허물을 고치는데 인색했고, 정치를 어지럽히는 궁녀의 농간이 있었으며, 간언을 올리는 신하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 원인을 전부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선조는 의정부를 통한 구언(求言)을 발표했다. 


 구언은 말을 구한다는 의미로 조선시대 임금이 신하와 백성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구언은 조정의 대소신하뿐만 아니라 초야의 선비들에게까지도 나라를 바르게 이끌 수 있는 기탄없는 의견을 내놓도록 하는 것이다. 구언은 심지어 내용이 사리에 맞지 않아도 용납했고 임금이 직접 읽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조선시대 과학적 지식은 오늘날보다 부족했을 지도 모른다. 그 부족한 만큼 자연을 두려워하고 공경하고자 하는 마음은 컸다. 자연의 이변현상을 더욱더 두려워해서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수신하고 반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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