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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포럼› 새벽의 유리창에서 몰락하는 달을 보면서 - 박혜범 칼럼니스트
  • 기사등록 2019-11-18 11: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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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몰락하고 있다.

잠들지 못한 세상 온갖 것들이 아우성치는 욕망 속에서

달이 몰락하고 있다.

 

달이 몰락하고 있다.

보는 눈도 없고 듣는 귀도 없고 말하는 입도 없는

달이 몰락하고 있다.

 

달이 몰락하고 있다.

쇠하여 기울어지고 볼품없이 이지러진 속내를 드러낸

달이 몰락하고 있다.

 

달이 몰락하고 있다.

끝 모를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잃어버린

달이 몰락하고 있다.

 

달이 몰락하고 있다.

살아야 하는 것들이 다시 살기 위해서 잠을 깨는 새벽의 유리창에서

달이 몰락하고 있다.

 

천년 전 혜철국사가 제자인 도선국사에게 흩어진 셋을 하나로 되돌리는 한 송이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연꽃을 전하여, 왕건으로 하여금 고려를 창업 세상을 구하게 하였던 역사의 현장인 구례 섬진강 강변에 자리한 오산의 모습이다.(13일 촬영)


1967년 해마다 겪어내야 하는, 죽음의 보릿고개를 넘기도 전, 이른 봄부터 닥친 극심한 가뭄으로 모든 농사를 망쳐버린 절망의 땅에, 하늘이 내리는 저주처럼 이어진 이듬해 1968년 가을까지 계속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지옥 같은 대가뭄으로, 마을마다 굶주려 죽어가는 이들이 속출하였고, 당시 전라도 산골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 졸업반이었던 나는 학교를 오가는 길에서 목격했던 굶어죽은 시신들의 참상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세세한 내막은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해 1968년 11월 17일 바로 오늘은, 내 운명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린 계기가 되었던 날이다.

 

설명하면, 지금 내가 날마다 거리의 논객으로 글을 쓰면서, 우리 사는 세상을 태평성대로 인도하여 갈, 성군(聖君)을 맞이하는 꿈을 꾸고 있는, 섬진강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비룡대(飛龍臺)의 용(龍)이 구름 속에서 그 모습을 내보이고, 봉성(鳳城)의 봉황(鳳凰)이 날아오르기를 바라고 있는, 근원이 돼버린 날이다.

 

그날 이후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11월 17일 오늘을, 살아오면서 일부러 특별하게 기억하며 지내오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우연히 오늘이 11월 17일임을 기억할 때면, 젊어서는 혼자서 소주라도 마시며 보냈었는데, 50년이 지난 2019년 11월 17일 오늘은, 멀리서 더 좋은 세상을 위한 걸음으로 오시는 귀인을 모시는 준비를 하다, 오늘이 그날임을 알았다.

 

왜 하필 어린아이가 너나없이 잘사는 태평성대를 꿈꾸게 되었던 그날이 오늘이고, 그 어린아이가 늙은이가 되어서, 우리 사는 세상의 민생들이 더 좋은 세상으로 나가기를 갈망하는 귀인을 맞이하는 오늘이 그날인지를 생각하니, 그날의 오늘과 지금의 오늘이 필연이라는 생각에, 간밤 이런저런 생각 속에서 밤을 새다, 새벽이 오는 유리창에서 몰락하는 달을 보며, 생각나는 감상을 메모해 두었던 글을, 오늘을 기억하는 오늘의 이야기로 여기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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