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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에세이› 나의고향 경주 양남,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가 피던 곳
  • 기사등록 2019-09-16 11:37:48
  • 기사수정 2019-09-17 1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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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미디어 이동한 칼럼니스트 전 세계일보 사장


나의 살던 고향은 경주시 양남면 석촌리 명대마을이다.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뻗어 나가다가 토함산을 쏟게 하고 여러 줄기가 동해를 바라보며 달려가다가 작은 한 줄기가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시는 곳이다. 


명대마을은 '밝은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앞산과 뒷산이 가까이 있어 위로 보이는 하늘이 좁다. 동산에 해가 떴다가 금방 서산으로 넘어가고 밤하늘에 달이 떴다가 금방 떨어진다. 그래서 해와 달이 번갈아 가면서 마을을 비추며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살던 고향은 산돼지와 입을 맞추며 산다는 두메산골이다. 마을 앞의 개울이 가까운 거리의 바다로 흘러간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가 작사하고 홍난파가 작곡한 국민의 가요인 '고향의 봄'  이다. 


봄이 되면 복숭아꽃 살구꽃이 마을을 덮었다. 여자들은 산과 들에 나가 나물을 캐고 진달래가 만발하면 배가 고픈 아이들이 꽃을 따서 먹었다. 

진달래 꽃나무 밑에 아이를 잡아먹는 문둥이가 있다 해서 꽃을 꺾으면서 무서워했다. 어른들은 밭에 씨를 뿌리고 논에는 벼를 심었다. 뽕을 따서 누에를 먹이고, 무명을 따고 삼을 벗겨 길쌈을 했다. 


마을에서 20리 정도 떨어져 있는 바닷가에 면사무소가 있는 하서리에 5일장이 되면 마을의 여자들은 곡식을 머리에 이고 남자들은 등에 짊어지고 걸어가 팔아서 해산물과 생필품을 사가지고 왔다.

부모님을 따라 장에 갔다가 혼자 바다 구경을 하러 바닷가에 가는 바람에 야단을 맞기도 했다. 산에서 소를 놓아먹이고 소풀을 베고 산에서 땔감 나무를 해오기도 했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일이 매우 힘 드는 노동이지만 형제와 이웃끼리 서로 도우면서 어려운 일을 해냈다. 설, 추석 명절이 되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사람들은 서로 음식을 나누며 즐겁게 보낸다. 


내가 어릴 때 다녔던 석읍초등학교를 찾아 갔다. 우리 마을에서 1km 떨어진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학교를 다닐 학생이 없기 때문에 학교는 폐교가 되었다. 당시 전교생은 200명 정도로 한 학년이 30명이상은 되었다. 

지금 학교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학교 건물의 겉모양은 옛날 그대로였다.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캠핑을 온 사람들이 설치한 텐트가 몇 개 있었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60년 전으로 돌아갔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을 하는 날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부모님과 떨어져 친구들과 운동장에 서 있었던 그 자리에 서 보았다. 

4학년 때 학예회를 하면서 토끼역을 맡아 바다 속 용궁에 들어가 죽지 않고 살아 나오는 연극을 하던 강당이 있던 자리도 보았다. 6학년까지 3년간 담임을 계속 했던 선생님이 공부를 잘 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졸업할 때는 교육감상을 받고 기뻐하던 생각도 났다. 


매년 소풍을 갔던 학교 앞 봉래산은 그대로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매년 운동회가 열렸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릴이 달리기와 기마전을 할 때는 부모님들과 선생님들과 전교생이 열렬히 응원을 했다. 달리기를 해서  일등을 해서 상으로 공책 3권을 타고 기뻐하던 생각이 났다. 


보자기에 책과 도시락을 싸가지고 어깨에 메고 다녔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는 빈 도시락 속에 반찬을 담았던 작은 통이 뛸 때마다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냈다. 

돈이 있는 아이가 사탕 하나를 사면 나누어 먹기 위해 돌 위에 놓고 돌멩이로 깨뜨리면 서로 집어 먹기 위해 다투었다. 


여름에는 친구들과 개울에서 목욕을 하며 고기를 잡았다. 그 옛날 그렇게 커 보이고 넓어 보이던 학교 건물과 운동장은 지금 보니 너무나 작고 좁아 보였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라고 한 야은의 탄식처럼 산과 개울은 예전과 다름없으나 그때 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미래와 과거의 사이에 현재가 있다. 그러나 그 현재도 금방 과거가 된다. 엄격한 의미에서 현재란 없다. 내 나이 10대 소년시절에 여기 교실에서 공부하고 운동장에서 뛰어 놀았던 그 사건들은 언젠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면 지워버려도 되는 걸가? 내 추억 속에 아련하게도 남아있는 이곳의 과거사를 돌아보며 그리워할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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