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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국가정보학과 초빙교수


 

 여름휴가를 겸해 백두산 주변 기행을 하였다. 백두산 등정과 함께 고구려 건국신화가 깃든 오녀산성과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등을 둘러보았다.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과 마주한 단둥과 통화에 머물면서 북녘 땅을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대련에서 시작해 백두산까지 광활한 요동 땅과 만주 벌판을 지나면서 중국의 큰 땅덩어리에 압도당하기도 하였다.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한번쯤 올라보고 싶은 곳이다. 같은 관광 팀에서 만난 칠십대 후반 관광객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여서 용기를 내어 혼자 왔다고 하는 걸 보면 대한민국 국민, 아니 한민족에겐 일종의 로망 같은 것임에 틀림없다. 출국 전에도 주위에서 백두산에 가도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느니, 등정 당일에는 가이드가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백 명이 가서 두 명 밖에 천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유래한 것이라고 겁을 준 때문인 탓도 있지만, 정상에 올라 안개 속에 갇혀 있던 천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을 보는 순간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청옥 물빛이 아름답기도 하거나와 그 곳이 민족의 발상지, 거룩한 성소, 신령스러운 봉우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백두산을 신성한 곳이라고 배워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애국가는 차치하고라도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이은상 작사/현제명 작곡 ‘대한의 노래’),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박정희 작사·작곡 '나의 조국')와  같이 백두산을 주제로 민족의 기상과 애국심을 기리는 노래들이 아직까지 입안에 맴돌고 있다. 그러나 백두산이 이처럼 민족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중국인들에게는 동악(東岳)인 태산, 서악(西岳)인 화산(華山), 남악(南岳)인 형산(衡山), 북악(北岳)인 항산(恒山), 중악(中岳)인 숭산(嵩山)으로 불리는 오악(五岳)에는 들지 않지만 동쪽에 있는 명산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공정과 관련되어 관심대상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10대 피서명산 중 제1산으로 등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민족(nation)이라는 개념 자체가 중세봉건사회가 무너지고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졌으며 근대화가 앞선 일본에서 이를 처음 번역해 사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백두산이 한민족의 성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도 사실 일제 식민지 시기에서부터라고 한다. 스스로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던 조선이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된 후 억압과 차별을 받게 되자 비로소 단군의 자손으로서 오랜 세월 혈통과 언어·문화를 함께한 공동운명체라는 민족의식에 눈을 떠 그에 상응하는 상징을 찾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떠오른 것이 바로 백두산이었던 것이다. 백두산 신화를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나중에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힌  최남선이라고 하는데, 그는 1927년 ‘백두산 근참기’라는 책을 내어 “백두산은 종성의 근본, 우리 문화의 연원, 우리 국토의 초석, 우리 역사의 포대”라고 규정하였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백두산이 ‘중국 곤륜산의 적장자’라는 등 신비롭고 중요한 산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 민족이 품고 있는 영산(靈山)이나 성소(聖所)와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조선 초기에는 영토에 포함되지도 않았고 세종 때 4군6진이 개척되면서 비로소 백두산에 근접하게 되었다. 사실 백두산을 정치적 상징조작에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백두산이 김일성 항일 빨치산의 밀영이 있었던 곳이라거나 김정일의 출생지(실제는 소련령 하바로프스크)라고 포장하고 ‘김일성 3대’를 ‘백두혈통’이라며 우상화 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군부통치 시절에 취약한 정권의 정통성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백두산을 성역화 하는 작업을 하였다는 점 역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어느 나라든 민족국가 형성 과정에서 정치적 상징이 필요하였고 또 그렇게 해서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해 나간다. 그런 점에서 백두산도 우리 민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상징적 존재이다. 이를 통해 국민이 하나로 뭉쳐 통일을 염원하고 번영을 기원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이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맞아 지구촌이 하나로 된 국제질서 속에서 지나치게 편협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 즉 국수주의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일제 강제징용자 배상 문제에서 촉발된 일본의 경제보복과 이로 인해 확산된 양국 간의 대립과 갈등은 우려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두 나라 위정자들은 민족감정을 자극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고 있지만 결국에는 두 나라 다 상처만 입게 될 것이 뻔하다. 결과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열세인 우리나라의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중국은 백두산 주변의 만주 일대를 동북공정이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변방 역사로 편입하려 들고 있다. 광개토대왕비나 장수왕릉 일대를 문화재 구역으로 정비해 놓았을 뿐 아니라 백두산도 자연보호구역으로 설정해 놓고 여름 성수기에 하루 3만여 명에 달하는 관광객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애국가 제창이나 태극기 흔들기와 같은 일체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번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제전쟁으로 가장 이익을 볼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일 것이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36년 간 우리나라를 식민지배 하였다면 중국 역시 고조선 이래 우리 민족을 수없이 침략하고 속국으로 삼았다. 가깝게는 6·25 전쟁 때 인민군을 파병해 천재일우의 통일 기회를 막고 북한과 혈맹을 맺은 원수(怨讐)의 나라이기도 하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민족의 대동단결도 중요하지만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국제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힘과 외교이다. 우리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와 같은 주변 4강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임이 분명하다. 구한말에는 이런 국제사회의 현실에 어두워 급기야는 주권을 침탈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가슴은 뜨거워야 하지만 머리는 냉철해야 한다. 우리가 민족감정만 앞세워 그동안 국가발전의 버팀목이 되어 온 한미일 공동 안보체제를 약화시킨다면 북중러 공조만 더욱 강화하게 하는 결과만 초래될 것이다. 

일본은 언젠가 넘어서야 할 대상이지만 때를 기다리고 힘을 키우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중국에서 압록강 넘어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그 것만이 공산독재에서 신음하는 북한동포를 하루빨리 구출해 낼 수 있는 지름길임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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