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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66) 민주평화당 대표가 정치인생 최대 위기에 몰렸다. 

박지원 의원과의 한 판 싸움에서 그로기 일보 직전이다. 정동영 반대편에 선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정치) 소속 의원 10명이 오는 12일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정동영은 당대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지만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는 숫자에 밀리면 무력해진다. 김경진 의원이 대안연대에 가세하면 평화당에는 정 대표 외에 현역의원이 4명(박주현·황주홍ㆍ조배숙ㆍ김광수)만 남는다. 최측근인 박주현 의원은 당적이 바른미래당(비례대표)이다. 중재파인 황주홍ㆍ조배숙ㆍ김광수 의원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거취를 탈당으로 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동영은 의원 1인의 정당대표로 전락한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정치인이 내년 4월 총선에 5선에 도전할 수 있을까.



정동영은 정치인생에서 수차례 고비가 있었다. 화려한 시절 못지않게 고난의 시절도 많았다.

MBC 앵커 출신에다 높은 지명도로 김대중 대통령 정부 시절 정치에 데뷔해 초기 탄탄대로를 겪었다. 하지만 2004년 총선 때 "어르신들은 투표를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할 분들이 아니니까요"라는 ‘노인폄하’ 발언으로 22번이던 비례대표 후보자리를 사퇴해야 했다.

 그 후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대표로 선거를 지휘했지만 참패했고, 이어 2007년 대선에서 반노무현 깃발로 여당 후보가 됐지만 야당 이명박 후보에게 표차가 530만표가 넘는 대패를 하면서 다시 거꾸러졌다. 


그러나 그는 대선 참패 이후 처신을 가볍게 해 큰 그릇의 지도자로서 위상을 스스로 떨어뜨렸다. 대패했다면 지도자로서 은퇴하고 자숙해야 하는데도 그는 다시 총선에 나왔다. 2007년 대선 바로 이듬해에 치러진 제18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구에서 출마, 정몽준에게 낙선하였다. 


2009년 4월 29일 고향 전주덕진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18대 배지를 달았지만 20대 총선에서는 문재인 대표와 결별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을 이탈해 안철수와 박지원이 창당한 국민의당에 합류해 4선 배지를 달았다. 그러고는 이번엔 안철수와도 결별해 민주평화당 대표에 올랐지만 박지원과 결별의 순간을 맞닥뜨린 것이다.  


정동영의 정치이력을 보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민감하고 자주 정치세력의 이합집산 중심에 서왔다. 그러다보니 정치적 세력화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가 정치적으로 손잡았지만 머잖아 등진 정치인을 보면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친노무현 세력들, 문재인 당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으로 이어진다. 

박지원 의원과는 이번에 등을 돌렸다. 박 의원의 주장을 들어보면  2018년 8월 5일 민주평화당 대표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정 대표가 박 의원을 “상왕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 홀로 의원’ 정당의 대표가 될 위기에 처한 정동영은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당 지지도가 최악이다. 리얼미터와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민주평화당 지지율은 우리공화당 지지율로 낮은 1%대에 머물고 있다. 이대로 내년 총선에 명함이라도 돌릴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다. 

 그렇다고 박지원 의원에게 백기투항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경우 박 의원에게 실질적으로 당대표자리를 내주는 것인만큼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박 의원이 당 실권자가 되면 80세 가까운 나이에 다시 내년 총선에서 의원 배지를 달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동영은 그것은 결코 못 보겠다는 입장이 분명하다고 한다. 따라서 정동영은 군소정당의 대표로서 내년 총선을 임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5선 배지를 달고 기사회생의 길을 찾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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