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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궁궐의 600년 숨결 되살려내는 왕현철 우리궁궐지킴이
  • 기사등록 2019-06-12 13:02:37
  • 기사수정 2019-06-12 18: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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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3시, 창덕궁 돈화문 앞은 한복 입은 국내외 사람들로 붐볐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복을 입고 돈화문에 들어서는 장면에 순간 놀랬다. 오래된 궁궐과 조화롭기도 했고, 우리 것에 대해 뿌듯해지는 느낌이었다.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한복을 빌려 입으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탁월하다!


왕현철(62·사진) 우리궁궐지킴이는 자료가방을 든 채 우리를 맞았다.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탐구심에 빛나는 눈빛이 형형하다.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경복궁은 직선이지만 창덕궁은 곡선입니다.” 왕 궁궐지킴이는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창덕궁은 입구를 지나자 직각으로 우회전한다.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자마자 돌다리가 기다린다. 

왕 궁궐지킴이는 “궁궐 앞에 물이 흐르는 천을 禁川(금천)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한자로 비단 금자를 써 錦川이라고 부릅니다” 라면서 돌다리를 넘었다. 그러면서 쉼 없는 해설이 시작됐고 그가 살려낸 600년 궁궐의 숨결은 생생하게 다가왔다. 


궁의 처마에는 단청과 부시가 있다. 두 개는 유지보수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궁의 권위를 상징한다. 특히 부시는 새가 날아들어 집을 짓는 것을 막아 목조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실제로 올려보니 철망 같은 게 걸려 있다. 당시에는 잘 삭지 않는 실 같은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선조들의 손기술과 지혜가 놀랍다. 


왕 궁궐지킴의 설명에 따르면 창덕궁은 불행한 역사 속에서 탄생했다. 1392년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운 뒤 태조 이성계는 2년 뒤 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겼다. 경복궁에 머물며 나랏일을 봤는데 왕자의 난이 일어나 피바람이 일었다. 다섯째 아들 방원이 형제인 방석과 방번, 조선을 세우는 데 크게 공헌한 정도전 같은 신하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2대왕 정종이 형제간의 골육상쟁이 벌어진 경복궁이 싫어 개경으로 환도했다. 3대 태종이 된 방원은 아버지가 수도로 삼은 한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형제의 난이 일어났던 경복궁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어 새로운 궁궐을 세운 게 창덕궁이다. 1405년 10월에 새 궁궐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지금으로부터 614년 전에 지어졌다. 


進善門(진선문)을 지나 왕의 길을 따라 100미터 정도 가면 인정문이 기다린다. 건물이 지형과 공간에 따라 배치되다보니 인정문은 다시 왼쪽으로 90도를 꺾는다. 仁政門(인정문)에서 仁政殿(인정전)의 압도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왕 궁궐지킴이는 “드라마에서 보면 왕들이 인정전에서 성대하게 즉위식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인정문 앞에서 조촐한 즉위식이 거행된다. 새 왕은 몇 차례나 왕위에 오르는 것을 거부하다 신하들의 거듭된 권유로 승낙한다”고 설명했다. 효종, 현종, 영조 등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선왕의 시신은 궁궐안 선정전 등 빈전을 설치해 안치된다. 효심의 발로로 보이기도 하지만 선왕의 시신이 있는 곳에서 왕 즉위식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니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인정전은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등 나라의 공식 행사가 열렸던 장소다. 마당에는 문신과 무신들 고관들의 위치가 돌에 새겨져 서 있다. 정3품 이상 되는 자리 옆에는 차양막을 설치하는 쇠고리가 바닥에 박혀 있다. 

왕 궁궐지킴이는 “이 고리는 내가 이름 붙였는데, ‘억울하면 출세하라, 고리’라고 합니다”라며 웃었다. 비가 오거나 햇빛이 쨍쨍 내리쬘 때 정3품 이상의 고관들만 그 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왕 궁궐지킴이는 인정전 앞에서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인정전에 있는 일월오봉 사진이다. 일월오봉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임금의 수레에 설치하는 일산인 취화와 더불어 제왕을 상징하는 의장물이다”라고 설명했다   


 임진왜란과 화재로 인정전은 세 차례나 소실됐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인정전은 1804년에 지어진 네 번째로 지어졌다. 


이어 왕과 신하가 만나 나랏일을 논의하던 편전인 宣政殿(선정전), 왕과 왕비의 거처인 大造殿(대조전)이 이어진다. 왕 궁궐지킴이는 대조전에 대해 "이름 그대로 크게 창조하는 곳, 훌륭한 세자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뜻" 이라고 했다.  

낙선재는  "선을 즐거워한다’는 뜻으로 할아버지 정조의 개혁의지를 담아서 지었다"고 했다. 왕 궁궐지킴이는 "후궁인 경빈 김씨와 애틋한 사랑이야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곳의 건물 높이는 왕과 왕비가 거처하던 궁궐에 비할 수도 없이 낮고 단청과 부시도 없다. 방도 한 평짜리 규모가 적지 않다. 방 아래엔 아궁이가 있다. 당시 참나무숯을 사용했다고 한다.



창덕궁 곳곳을 탐구하는데 1시간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본격 인터뷰를 시작했다.


-궁궐지킴이 해설을 어떻게 들을 수 있나.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홈페이지에서 예약신청할 수 있다. 일시 시간 장소를 표시하면 된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해설을 신청하나.

▷기업체와 초중등학생 등이다. 지난 5월엔 호텔신라 직원 30여명에게 해설을 한 적이 있다. 


-해설을 한 뒤 팁이나 후원금을 받나.


▷일체 금품을 받지 않는다. 무료 자원봉사다. 후원금을 내려면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홈페이지로 해주면 고맙겠다.


-궁궐지킴이가 해설하는 곳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5곳과 종묘와 성균관이다. 


-자원봉사인데 어떻게 유지되나.

▷우리궁궐지킴이 회원들이 매달 회비를 1만원 이상 낸다. 순수한 자원봉사활동이다. 해설사는 경제적 보상을 단 한 푼도 받지 않는다. 교통비, 식비, 마이크 구입 등 모두가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다만 궁궐과 왕릉을 무료로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을 발급 받는다. 


-어떻게 궁궐지킴이가 됐나.

▷방송사를 퇴직한 뒤 9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다. 3개월의 이론교육과 6개월의 현장교육을 받는다. 30만원의 수강료를 내고 이론은 주 2회, 현장실무는 주 1회 교육받는다.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전문가가 강의하고 현장을 답사한다. 3개월 강의 과정에 출석과 시험 등에서 조건을 충족하면 현장실습으로 넘어간다. 현장실습은 선배로부터 받는다. 도제식이다. 3+6의 9개월 과정이 모두 끝나면 수료증을 받는다. 

나는 <한국의 재발견>이라는 사단법인을 통해서 지난해 60명의 동료와 함께 이 과정을 마쳤다. 창덕궁과 경복궁에 투입돼서 해설을 하고 있다. 


-돈 한 푼 못 버는데도 보람이 큰가.

▷나는 퇴직 3년차다. 궁궐 해설로 경제적 이익은 얻지 못하지만 또 다른 값진 선물을 얻고 있다.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궁궐 해설을 할 때는 최소 2만 보 이상 걷는다. 그럼에도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것은 돈보다 귀한 내 스스로의 움직임이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KBS의 PD로서 <역사추리> 등의 역사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를 통해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오늘날 궁궐해설사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조선의 역사와 궁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선물로 다가온 것이다.

 

왕현철 우리궁궐지킴이는 ‘왕현철의 궁궐이야기’를 본지 <이슈게이트>에 매주 연재하고 있다. 그는 KBS PD 출신이다. KBS미디어 감사, KBS 재팬 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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