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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과 소통, 지역감정 극복...노무현 정신의 본질...현실은 분열과 대립, 막말 지역감정 선동 난무


2005년 9월7일 노무현 대통령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청와대에서 영수회담을 한 자리에서  '대연정'을 거듭 제안했다. 박 대표가 “그런 말씀 꺼내지 말라”고 거부하는데도 노 대통령은  “비판만 하지 말고 한번 내각을 맡아서 해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에 집착한 것은 대립과 갈등의 정치를 줄이고 지역대결 구도의 완화를 위해서는 그게 최선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몽상적이고 일방적인 태도가 문제점이었지만 손해를 보더라도 큰 그림을 그리려는 그의 미래지향적 태도는 보수진영으로부터도 적잖게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박 대표가 그 때 통 크게 수용했다면 한국정치의 혼란상과 후진성은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야당 인사가 국무총리가 돼 내각을 맡으면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고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변경하면 사생결단식 정치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제왕적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책임정치가 가능한 4년 중임제로 바꿨으면 갈등과 분열, 대립의 정치가 다소 줄어들 수도 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됐지만 대립과 갈등의 한국정치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여야는 상대를 힘으로 눌러 가진 것을 다 뺏으려 더욱 격렬히 충돌하는 모습이다. 상대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에 상처 주는 막말마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모두의 책임이지만 노무현 정신을 기리는 사람들도 이 고질적인 진영 대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2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광주 방문을 앞두고 “황 대표가 5·18 민주화운동 39주기 기념식에 왜 오겠느냐. 얻어맞으려고 오는 것이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려는 의도”라고 단언하며 “황 대표가 광주에 왔을 경우 첫째,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둘째, 절대 말을 붙이지 않는다. 셋째, 절대 악수를 하지 않고 뒤돌아서는 게 최선”이라고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이 같은 말은 지지자들의 기분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만들어줄지 모르지만 통합과 소통이 본질인 노무현의 언어는 결코 아니다. 


유 이사장에 앞서 노무현재단이사장을 지낸 이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대안정당의 어려운 길을 회피해온 자유한국당의 무책임성도 비난받아야 하지만, 이 대표가 이끄는 집권당이 게임의 룰인 연동형 선거제도를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강행한 것은 독주일 뿐이다. 이해찬의 방식은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에 내각까지 주겠다면서 대연정을 제안한 데 비하면 제1야당에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으니 굉장히 효과적이긴 하다. 하지만 이 대표의 대결 정치는 손해를 마다않는 ‘바보’ 노무현의 방식과는 다르게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낮은 지지율에 허덕였다. 야당은 강력했고 지도자의 품격을 중요시하는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소탈한 언행은 언제나 말썽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노 대통령은 지지율과 진영의 작은 이익에 매달리기보다 대국적인 어젠다에 몰두하고 지지파와 반대파들에 대한 설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 한미 FTA추진과 이라크 파병이다. 둘 다 지지자들이 극렬하게 반발했지만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핵심적 국가이익을 위해 설득하는 길을 애써 고집하고 관철시켰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23일)를 맞아 최근 한 공중파 TV가 노무현 기념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보니 그는 투박했지만 더욱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20년 전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며 서울종로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지역에 내려가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한 날 지지자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했다. “세월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선택하는데 내가 좀 일찍 나선 게 아닌가 싶다. 나는 계속 지면서도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고. 

최근 국회 충돌, 광주 5·18 기념식 충돌, 독재자 공방을 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 노무현정신이 살아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된다. 여전히 진영 대립과 갈등이 첨예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대 과제를 달성하려 지면서 이기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부딪치며 살아왔는데 오늘 그런 정치지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칼럼은 에너지경제신문 5월23일자 전문가시각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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