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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현철의 궁궐이야기(14)경복궁 최고의 미인 경회루④중종, 외교를 펼치다 - ↳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알게 된 궁궐
  • 기사등록 2019-03-23 1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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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현철 우리궁궐지킴이, 전 KBS PD


    조선의 외교는 사대교린(事大交隣)이 기본 틀이다. 중국 같은 큰 나라는 섬기고 일본 등과는 이웃으로 지내자는 것이다.  

조선은 건국 초기 명나라와 중요한 외교적 현안이 있었다. 태조 3년 명나라 사신 황영기가  해악(海岳), 산천(山川)등의 신령에 고하는 축문을 가져왔는데 여기에 ‘고려 신하 이인임의 후사 이성계가 공공연하게 사람을 보내서 정탐하고......’라는 문구가 있음을 알았다. 이성계가 고려 신하 이인임의 후손으로 명나라의 침범을 엿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인임은 이성계의 정적으로 권력 농단 혐의로 이성계에 의해서 제거된다. 이성계가 그런 이인임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조선으로서는 너무나도 황당무계한 내용이고 언어도단이었다.   

 태조어진 (국보 제317호, 전주 경기전 소장)


고려 말 윤이와 이초는 이성계의 반대편에 섰다. 이들은 명으로 도망가서 명의 힘을 빌려서 이성계를 제거하고자 했다. 이들이 이성계에 대한 잘못된 내용을 명나라에 알렸고 그게 명의 ‘조훈조장(祖訓條章)’에 실렸던 것이다. 이른바 ‘종계변무(宗系辨誣)’사건이다. 조선의 입장에서 종계, 즉 족보의 무고함을 따져서 명백하게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 후 조선은 “태조의 세계(世系)는 이인임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조훈조장의 잘못된 종계를 고쳐 달라고 명에 요구를 했다. 태종 4년 명나라에 사은사로 간 이빈, 민무휼은 “(황제가) 지난번에 들은 이야기는 아마도 잘못인 듯하므로 자료에 따라서 개정하라”는 명나라의 공문서를 받아 왔다. 조선은 잘못된 종계가 고쳐졌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13년이 지난 중종 12년 좌참찬 이계맹은 중종의 세 번째 왕후 문정왕후를 왕비로 책봉하는 고명을 청하는 주청사로 북경에 간다. 그는 명나라 ‘대명회전’의 조선국 항목의 주(註)에 “이인임의 아들 성계가 왕 씨 성의 4명의 왕을 시해했다”는 놀라운 기록을 발견한다.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라는 조훈조장의 기록뿐만 아니라 태조가 네 명의 왕까지 살해했다는 기록을 추가로 확인한 것이다. 중종은 조훈조장에 더해서 대명회전까지 고쳐야 할 매우 중대한 사안을 떠안게 됐다. 


 중종은 그 후 예조판서 남곤을 명에 보내서 대명회전의 잘못된 내용을 고쳐달라는 주청문(奏請文)을 올린다. 중종은 대명회전에 실린 내용은 윤이와 이초가 허구로 날조한 것이고 아울러 태조의 가계도와 이인임의 행적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조선의 신하와 백성들은 이성계가 사대지성(事大之誠)과 안민지공(安民之功)이 있어 왕으로 추대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도 명은 고쳐 주겠다는 칙서를 주었으나 판본은 그대로였다.

 중종은 일의 중대성에 비추어서 대명회전을 개정하는 시기에 맞춰 주청사를 다시 보내거나 자신이 직접 명나라에 가서 고치고 싶다는 답답한 마음까지 토로했다. 중종은 자신의 뿌리를 올바르게 하고 싶은 소망이 컸으나 성과 없이 20여 년을 흘려보내야 했다.


 중종 32년 명나라에서 사신 2명이 온다. 정사는 공용경이고 부사는 오희맹이다. 명나라에서 오는 사신은 두 종류다. 문신과 환관이다. 이번에 온 사신은 문신으로 대명회전을 수찬하는 직함을 겸하고 있었다. 중종은 직함을 보고서 대명회전의 잘못된 종계를 고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판단한다. 중종은 사신을 경회루로 초청하고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한다.

 중종은 사신들이 바람이 부는 경회루 2층의 누각에 올라갈 것을 대비해서 두꺼운 옷을 입게 하고 이층에 깔 자리나 과일 그리고 사신이 사전에 요구한 등과록도 준비한다. 등과록은 과거 급제자의 명부다. 사신은 조선에 대한 자신의 견문을 기록하기 위한 자료로서 등과록을 활용하고 싶다고 했다. 사신 수행자들의 무역도 전면적으로 허락해 주었다. 이것은 논란이 많았으나 무역의 실질적 수혜자가 사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기녀와 악공은 병풍 뒤에 대기해 들어오는 동선까지 세세하게 지시한다. 사신이 좋아하는 투호놀이를 위해 궁방의 투호도 점검토록 한다.

 사신은 미시(오후1시~3시)에 경회루 남문에 도착했다. 중종은 섬돌 아래까지 마중을 나갔다. 중종은 서로가 절을 하고자 청했으나 사신의 만류로 읍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중종은 바로 본론에 들어간다. 조선의 올바른 종계를 기록한 단자를 보여준다. 정사인 공용경은 대명회전의 수찬자로서 전하의 간절한 소망에 부응하겠다고 했다. 다음에 대명회전의 전질을 가져와서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종계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은 나라의 수치와 모욕으로 여겼던 중종에게 일이 너무나 쉽게 풀리는 듯 했다.

 경회루(국보 제224호)

중종은 사신과 같이 식사를 했다. 서로가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맛있다고 칭찬도 해 주었다. 날이 깊어져 경회루 누각에 올라가서 불꽃놀이도 구경했다. 광대화(廣大火)와 포도화(葡萄火)의 불꽃이 터지고 사신은 큰 잔에 술을 부어서 마시기도 했다. 그런데 중종을 당황하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진다. 중종은 사대의 예가 지나쳤다고 신하들에게 따가운 질책을 받는다.  

 사신이 임금에게 답례로 큰 글씨를 써서 드리고 싶다고 해서 탁자와 종이를 준비했다. 사신은 기녀들에게 촛불을 들게 하고 춤도 추게 했다. 사신은 촛불을 든 기녀를 흘겨보고 농담도 하면서 큰 붓으로 적신 먹물을 뿌려서 기녀의 옷과 얼굴에 먹물이 튕겼다. 분위기가 갑자기 소란해졌다. 중종과 시립한 신하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사헌,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좌찬성, 이조참판 등이 모두 임금에게 입을 열었다.

“오늘의 잔치는 예를 차리기 위한 연회인데 밤까지 한 것이 이미 예가 아니다.”

“기녀에게 외설한 짓을 한 것은 방자하다. 통분하다.”

“사대의 예를 갖추어야 하지만 임금의 행동에는 한계가 있다.”

“내일 근정전 초청행사를 취소하자.”

중종은 신하들의 분노를 모두 받아들인다.

“내가 사신을 접대하면서 예를 잃은 것은 아뢴 말과 같다. 상하의 뜻이 모두 같다.” 

중종은 더 이상 사신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중종은 조상의 종계를 고쳐야 하는 간절함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 중종은 숙고 끝에 남은 일정을 진행하도록 한다. 


 사신의 일정에는 양화도(楊花渡) 유람이 포함돼 있었다. 양화도는 중국 사신들에게 명승지로 알려져 있어서 공식 일정이 끝나면 뱃놀이를 하면서 업무의 긴장을 푸는 곳이었다. 사신도 양화도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양화도 유람에는 통상 ‘여악(女樂)’ 이 포함돼 있다.

 정사 공용경과 부사 오희맹은 임금에게 하직인사를 하면서 양화도 유람을 언급했다. 양화도 유람에는 한 항아리의 술만 가져가서 서너 명의 재상과 함께 마시겠다고 하면서 기녀와 악공은 안 와도 좋다고 했다.  

 사신의 작별인사를 받은 후에 중종은 승지들에게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사신들이 ‘여악’을 부르지 않은 것은 경회루의 과오를 뉘우친 듯하다.”  

  “우리의 격분을 알아차리고 겉으로는 감사하는 체 하지만 속의 불만이 대명회전의 수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조상의 잘못된 종계를 고칠 수 있는 사신을 극진히 접대하면서도 사대외교에도 예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신하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고뇌하는 중종의 모습을 경회루에서 떠올려보자.

 


 

*종계변무는 이후에도 외교적 노력이 있었고 선조17년(1584) 종계변무주청사 황정욱이 대명회전의 개정한 전문을 가져왔다. 중종이 경회루에서 외교를 펼치고 47년이 지난 후였다.  


*공극과 필운의 유래

  명나라 사신 공용경과 오희맹은 경회루에 올라서 중종의 청으로 백악산과 인왕산의 이름을 짓는다. 정사 공용경은 백악산을 ‘공극(拱極)’이라 하고 ‘북쪽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부사 오희맹은 인왕산을 ‘필운’이라 하고 ‘우필운룡(右弼雲龍)’에서 따온 것으로 인왕산이 임금의 오른 쪽에서 보필한다는 뜻이다. 공극과 필운은 중국 사신이 백악산과 인왕산에 각각 지어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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