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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1-12 23: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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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환으로 오랜 병상생활을 한 박보희 전 세계일보 사장이 12일 오전 7시 30분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문선명 통일교(평화통일가정연합) 전 총재의 오른팔로 미국 선교의 1등 공신이다.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문 총재의 미국 현지 연설 때 영어 통역으로 이름을 날렸다. 

문 전 총재가 생전의 북한 김일성과 교류할 때는 일본과 중국, 북한을 오가며 특사역할을 수행했다. 1991년 12월 평양에서 열린 문선명 세계평화가정연합 총재와 김일성 북한 주석의 단독 회담 때 문 총재를 수행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하자 북한을 방문해 직접 조문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 집권 때인데 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보희씨에 대해 한동안 입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정무분야에서 탁월한 보좌를 한 고인은 통일교 기업경영에서는 실패를 거듭했다. 중국에 통일교가 자동차 조립공장을 차렸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중동 쪽 사업가로부터 사기를 당해 문 전 총재로부터 신임을 잃었다.

고인은 1976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대서특필해 불거진 '코리아 게이트'(박동선 사건)에 연루됐지만  2년 뒤 미 하원에 출석해 눈물을 흘리며 증언한 일로 유명하다.

코리아 게이트는 중앙정보부가 재미 사업가 박동선을 통해 미 정치인들에게 로비 활동을 펼쳤다가 거센 역풍을 맞아 1970년대 한미관계를 최악으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고인은 코리아게이트를 조사하는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국제기구소위원회('프레이저 위원회')에 증인으로 소환됐으나 외려 도널드 프레이저 위원장에게 공격을 퍼붓고 애국심을 자극하는 공개 증언으로 위기를 빠져나왔다. 그의 증언은 저서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고인은 이 증언으로 국내에서 이름이 크게 알려져 서울대 등지에서 수많은 강연을 갖기도 했다. 

1930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육사 2기 생도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 보좌관과 선화학원 이사장, 미국 뉴욕시티트리뷴 발행인, 워싱턴타임스 회장 등을 지냈다. 1991년 11월 세계일보 사장에 취임해 약 3년간 회사를 이끌었다. 

박 전 사장은 문 전 총재의 제자이면서도 사돈관계다. 딸 박훈숙(현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이  사고로 사망한 문 전 총재 차남과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성씨도 바꿔 문훈숙이 됐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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