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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1-12 15:21:38
  • 수정 2019-01-12 22: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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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대학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가 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란 책이 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나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제3자적 시각에서 일본인의 특성을 파헤쳤다면, 오구라 교수는 한국에서 8년간 유학한 결과를 토대로 ‘도덕지향’이라는 키워드로 한국인의 특성을 분석해 냈다. 그의 주장은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한국인의 도덕 지향적 심리구조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책 제목 그대로 한국을 ‘하나의 철학’으로 규정한다. 그 철학은 도덕철학이고, 정확하게는 유교철학 중에서도 주자 성리학이다. 조선왕조가 멸망한 지 100년이 넘은 지금도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성리학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의 기본이념으로 삼아 천리(天理)와 인간도덕의 완벽한 일치를 추구하는 정치(精緻)한 이기론(理氣論)을 만들어냈다. 조선의 지배계층인 사대부들은 바로 이 이기론을 놓고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였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서는 그들보다 그래도 도덕적으로는 우위에 있다는 자폐적 우월주의로 맞섰다. 심지어는 병자호란의 수모를 겪고 나서도 청(淸)을 오랑캐 나라라고 멸시하면서 중화(中華)의 진정한 계승자임을 자처했다. 구한말 세계사적 격변기에도 ‘위정척사(衛正斥邪)’의 깃발 아래 나라의 문을 굳게 잠근 채 성리학에 매달렸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호질』은 당시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바로 이 위선적 도덕 지상주의를 통렬하게 갈파하였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최훈의 소설 『남한산성』  역시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빠져있는데도 얼마나 도덕과 대의명분에 집착하였는지를 여실하게 짚어주고 있다. 



오구라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지금도 한국사회는 도덕적 명분을 놓고 권력과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거대한 극장이다. 도덕을 지향하는 것과 도덕적인 것은 다르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사람들보다 반드시 도덕적으로 산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도덕의 잣대로 재단해 철저하게 우열을 가리는 도덕 지상주의에 지배당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도덕 지향성은 일견 보수성을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진보성과도 직결된다. 보수가 도덕을 외치면 ‘꼰대’가 되고 진보가 도덕을 외치면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전두환 정권이 ‘정의사회 구현’을 외쳤듯이 문재인정부가 이 땅에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적폐척결’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논리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최근의 ‘민간인 사찰’이나 ‘내부 고발자’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자세를 보면 이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 개월 간 과거 정부의 부도덕성을 바로잡겠다고 나라 전체를 온통 벌집 쑤시듯이 해서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지금 그들의 잣대로 10년 전, 아니 30년, 50년, 심지어는 70년 전의 일까지 재단하려든다는 것이 사리에 맞는 일인가? 조선시대도 후기에 들수록 도덕 지상주의가 심해지면서 당파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다가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급기야는 나라까지 망하였다. 오늘날 그 전철이 되풀이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도덕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가 도덕적일 때만이 빛을 발한다.


단국대학교 행정법무대학원 초빙교수 채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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